정부가 다시 대출 규제 카드를 꺼냈다. 지난 6·27 대출규제로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잡히지 않자 이번엔 전세자금대출까지 조이겠다는 심산이다.
시장에서는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제한했던 이전 규제만큼의 충격은 아닐거라 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주택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출규제는 서민 주거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8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은 전날(7일) 정부가 발표한 가계대출 규제를 반영하기 위해 전산 작업에 들어갔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비대면 대출을 중단했고, KB국민은행은 일부 대면 대출 업무를 일시적으로 막았다. 전산 작업이 끝나는 대로 대출 접수를 다시 받는다는 입장이다.
이번 ‘9·7 추가 대출 규제’는 부동산 규제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에서 집을 살 때 집값의 40%까지만 대출을 허용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전세대출 한도 축소다. 지금까지 보증기관마다 달랐던 1주택자의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2억원으로 일원화했다. SGI서울보증은 3억원, 주택금융공사는 2억2000만원, 주택도시보증공사는 2억원으로 제각각이었던 조건을 하나로 맞춘 것이다.
정부는 전세대출 규모가 2015년 46조원에서 지난해 200조원을 넘어선 점을 지적하며, 전세대출이 전세가격을 높이고 그 결과 매매가격까지 끌어올린다고 진단했다. 대출을 통해 전세 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 중심의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명분이다.
시장의 반응은 우려에 가깝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대출 축소가 아니라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서민 주거 안정 차원에서는 불안 요인이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 많다.
전세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매매 전환이나 월세 전환이라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매매 수요가 늘면 집값을 다시 자극할 수 있고,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가는 수요가 커지면 임대료 상승은 불가피하다. 주택 공급이 충분히 뒤따르지 않는다면 월세화가 가속화하며 주거 불안정이 장기간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공공청사·임대주택·학교 부지 등 공공자원을 활용한 공급 방안은 긍정적이지만, 주민 협의·도시계획 변경·예산 문제 등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실제 체감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LH 직접 공급은 속도를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재정 부담과 부지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이번 대책의 효과는 주택 공급 계획의 사업성 확보와 실행 속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까지의 공백기에 전세대출 규제가 월세 전환을 앞당겨 세입자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월세 가격이 가계 소득 수준을 넘어설 경우 가격 상한제 같은 보완책 논의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대출 한도 축소 등 임차시장과 관련된 부분은 장기적으로는 필요할 수 있지만 빠른 공급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월세 전환을 가속화해 서민층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공급 효과가 체감되기 전까지의 서민 주거 안정 장치를 병행하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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