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 기업공개(IPO)를 앞둔 명인제약이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계획을 공개했다. 외부적으로는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시장 신뢰 확보와 기업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를 둘러싼 승계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단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명인제약은 최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정정 증권신고서를 통해 상장 후 중장기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명시했다. 기존에는 창업주 이행명 회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회사를 이사회 중심의 경영 구조로 옮겨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회사는 2022년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임기를 최대 4년으로 제한하는 정관을 개정했고, 올해 초에는 대표이사 임기를 최대 6년까지만 허용한다는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명인제약은 IPO로 회사가 커질 것을 염두에 두고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은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상속세 회피용 상장’ 논란과 맞닿아 있다. 현재 이 회장은 지분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두 딸까지 합치면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95%에 이른다.
기업 가치가 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상속이 현실화되면 세율은 최대 60%에 달한다. 이는 수천억원대 세금 부담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가업 승계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후계자가 최소 10년 이상 직접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문제는 장녀 이선영 씨가 1년 만에 사내이사 자리에서 물러났고, 차녀 이자영 씨는 별도의 개인 회사를 운영 중이라는 점이다. 승계 요건 충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장은 명인제약이 IPO를 통해 ‘세금 부담을 줄이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의식한 명인제약은 정관 개정으로 대표이사 임기를 제한하고 두 딸이 자동적으로 경영권을 이어받을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실제로 두 딸은 현재 사내이사 명단에 올라 있지 않고, 향후에도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으면 승계 논란의 여지가 좁아진다. 업계 내에서는 이번 결정에 이 회장의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전문경영인을 앉히더라도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는 한, 실질적 지배는 오너 일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 회사 매출의 20%에 달하는 광고비를 차녀 이자영 씨 개인 회사에 지급했던 일감 몰아주기 논란, 사옥 매입 시 보증 제공 의혹 등은 여전히 시장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는 ‘형식은 전문경영인 체제, 실질은 오너 경영’이라는 비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IPO를 통해 긍정적인 영향도 존재한다. 회사는 1500억원 이상을 조달해 경기 화성 발안2공장 신축과 글로벌 신약 개발에 투입할 예정이다. 펠릿·캡슐 생산시설은 연간 6억 캡슐 생산이 가능한 국내 최대 규모로, 약물전달시스템(DDS) 기반의 제형 국산화와 CDMO(위탁개발생산) 진출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다. 또 이탈리아 뉴론(Newron)과 손잡고 치료저항성(TRS) 조현병 신약 ‘에베나마이드(Evenamide)’ 글로벌 임상 3상에 참여하며, 글로벌 제약사로의 도약을 노릴 예정이다.
재무지표만 놓고 보면 명인제약은 ‘알짜 제약사’로 평가받는다. 2024년 별도 기준 매출 2694억원, 영업이익 927억원, 영업이익률은 34.4%에 달했다. 국내 제약업계 평균이 10%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 성과다.
이익잉여금도 5241억원에 달하며, 5년 이상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이어왔다. 이는 자체 합성 원료와 자체 개발 제품 비중이 95% 이상이라는 구조적 강점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그동안 대중적 인지도에서 손해를 봐왔다. 일반인에게는 ‘이가탄’ 이미지가 강했지만, 실제 주력은 치매, 조현병, 우울증 등 CNS 전문의약품이었다. 명인제약은 상장을 계기로 ‘숨은 강자’가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려 한다.
그럼에도 시장 신뢰도를 쌓아야 한다는 불안감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IPO 이후 주가 흐름에 따라 상속세 과세 기준이 변동될 수 있다는 점은 변함없다. 공모가보다 낮은 주가가 형성되면 세금 부담이 경감된다. 지분 일부가 신주 발행으로 희석되면 과세 대상 자체가 줄어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아무리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외쳐도 ‘승계 목적 IPO’라는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결국 향후 몇 년간의 행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사회 독립성 강화, 외부이사 비중 확대, 투명한 배당 정책 등이 뒤따라야만 전문경영인 체제가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선언은 시장의 불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형식적 카드’에 그칠 위험이 크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명인제약의 IPO를 두고 ‘글로벌 도전’과 ‘승계 이슈’가 동시에 거론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도 “CNS 분야 국내 1위 기업으로서 쌓아온 기술력과 수익성은 명인제약만의 강점이다.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이 진정성 있게 이뤄진다면 승계 논란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제약의 위상을 높일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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