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선 데이트 트래픽의 폭증을 유발한 구글은 한국 통신업계에 슈퍼 갑으로 통한다. 국내외 콘텐츠 제공업체(CP)가 통신망 이용에 따른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하지만, 구글은 협상장에 나서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하지만 정부를 포함해 누구도 구글과 관련한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해법 제시에 인색하다. 구글 규제 시 자칫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등 연쇄 반응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6년 상호접속고시 개정을 통해 트래픽 과다 증가에 따른 통신망 유지·보수의 책임을 통신사에서 CP로 확대 적용했다. 과거에는 통신사업자(ISP)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할 때 무료로 쓸 수 있는 ‘무정산’이 원칙이었지만, 고시 개정 후 트래픽량에 따라 비용을 낸다. 실질적인 접속료는 사업자 간 합의를 따른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합리적인 대가 산정을 위한 ‘망 이용대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중이다. 글로벌 사업자 페이스북은 KT·SK브로드밴드 등과 협의해 연간 수백억원 규모의 망 이용 대가를 낸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업체도 일정 이용료를 낸다.

구글만이 요지부동이다. 유튜브를 비롯해 국내 발생 트래픽의 40%쯤을 구글 서비스가 차지한다. 과도한 데이터 트래픽 증가를 유발함에도 이 회사는 통신사에 별도의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거부한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비용은 사업자 간 협의에 따라야 하는데 영향력이 막강한 구글이 모르쇠로 일관할 경우 해결 방법이 없다"며 "상호접속고시 개정 후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 논란이 발생한 것은 구글로 인한 문제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 / 구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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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행정법원 1심은 방송통신위원회가 2018년 12월 의결한 페이스북 관련 제재를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무단으로 서비스 접속 서버를 변경해 이용자에게 피해를 줬다고 판단했지만, 행정법원은 피해가 아니라 불편을 준 것이므로 방통위의 제재 자체가 잘못됐다고 봤다. 방통위는 1심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다.

이용자 이익 침해를 다룬 법원 판결은 엉뚱하게도 상호접속고시 이슈로 불똥이 튀었다. 페이스북, CP, 인터넷기업협회 등이 통신망 유지보수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통신사에 있는 만큼 현 상호접속고시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인터넷기업은 매년 통신사에 지불하는 망 이용 대가가 자칫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인터넷기업들도 망 접속 대가 논의의 시작점인 구글에 대해선 해당 이슈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페이스북과 같은 외국업체로선 ‘같은편'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인터넷 업체들도 구글을 애써 이슈에서 빼놓으려 한다.

물론 ‘역차별'을 거론한다. "구글은 내지 않는 망 이용대가를 왜 우리에게만 받느냐"는 항변이다. 하지만 그 행간에 "구글도 정상적으로 내게 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우리도 내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이게 본심이라면 이렇게 항변할 일이 아니라 한국 통신사업자를 고소해야 한다. 통신사업자가 망 이용대가를 받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법적 판단을 받으면 될 일이다.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지만 정작 인터넷기업들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망 이용대가 지불 자체에 법적 문제가 없음을 자인하는 것은 아닌가.

정부도 구글 언급을 가급적 피한다. 호기롭게 페이스북을 제재했던 정부이지만 구글 앞에서만 작아진다.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구글 관련 문제에 대해 "한국만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면 WTO 제소 등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EU 등 글로벌 주요 국가와 공동 대응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며, 향후 대응 방법을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고민도 이해한다. 이해관계자 모두 납득할 정도로 딱부러지는 해법을 찾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논란이 오랫동안 지속됐는데도 업계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부가 너무 수수방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정책, 특히 법 집행의 힘은 공평함에서 나온다. 누구는 힘이 있어 예외 처리하면 정부 역시 역차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구글부터 망 이용대가 협상에 앉힐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필요하다면 통신사로 하여금 구글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캐시서버 운영부터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 구글이 지금처럼 한국 시장을 ‘가만히 놔둬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이 더이상 지속해선 곤란하다. 한정된 국제망 자원 활용에 따른 구글 서비스 이용 속도 저하쯤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정부와 업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