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전국 유·무선 장애가 인재(人災)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에서 발생한 네트워크 설정 오류가 KT 관리·감독 부재로 전국 단위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피해 규모를 키웠다.

하지만 이번 통신 대란의 책임이 KT에 있음에도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물기 힘든 상황이다. 피해자 보상책 역시 KT 결정이 중요한 상황이다. 엄중한 상황인 것은 맞지만, KT가 내놓은 보상책이 피해 범위보다 부족하더라도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경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KT 네트워크 장애 원인 분석 결과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경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KT 네트워크 장애 원인 분석 결과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키운 KT 인터넷 장애…"부산에서 발생한 오류가 전국 단위로 삽시간에 확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2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개최해 KT 네트워크 장애의 원인과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KT 전국 유·무선 장애는 KT 부산국사에서 이뤄지던 기업망 라우터 교체 작업에서 발생했다. KT 협력업체 작업자끼리 라우팅(네트워크 경로 설정)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잘못된 설정 명령을 입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라우팅 설정 과정에서 명령어 입력 중 마무리 작업인 엑시트(exit) 명령을 누락해 잘못된 라우팅 경로가 발생한 것이다.

설상가상 지역에서 발생한 라우팅 오류를 차단할 장치는 없었다. KT 네트워크에 있는 라우터들을 연결하는 프로토콜에 잘못된 데이터 전달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던 탓이다. 라우터끼리 정보 최신화를 위해 자동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잘못된 라우팅 정보가 제한 없이 빠르게 확산했다.

허성욱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이번 사고가 기본적인 업무 원칙조차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고 짚었다. 그는 "네트워크 작업을 할 때 야간에 하는 것, 한 번 테스트한 다음에 오픈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며 "파란불에 신호등 건너라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같은 오류로 25일 오전 11시 16분경부터 KT 네트워크에 트래픽 부하가 발생했다. KT는 이를 4분 후인 11시 20분에 인지한 후 디도스 공격을 염두하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KT는 오전 11시 40분에 과기정통부에 이같은 문제를 알렸고, 이어 44분에는 라우팅 오류에 따른 장애라고 문제 원인을 정정했다. KT는 오전 11시 57분부터 복구를 진행, 오후 12시 45분경 복구를 완료했다고 과기정통부에 알렸다.

나성욱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미래네트워크센터장은 "문제가 된 라우터를 독립시키는 작업이 첫째였고, 이후 각각의 지역 라우터에 접속해서 문제 된 프로세스를 삭제하고 이후 살리는 작업을 통해서 정상화를 시켰다"고 KT 복구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IPTV와 음성전화·문자 서비스망의 경우 인터넷 서비스망과 별도로 구성돼 있지만 25일 오전 단말 전원 리셋에 따른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부하가 발생했다. 인터넷 접속이 끊겨 장애 원인을 모르던 사용자가 IPTV 단말과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켜거나, 전화로 상황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트래픽이 급증한 탓이다.

KT 부산국사에서 발생한 라우팅 오류가 전국 단위 라우터로 확산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미지 / 과기정통부
KT 부산국사에서 발생한 라우팅 오류가 전국 단위 라우터로 확산한 과정을 설명하는 이미지 / 과기정통부
KT, 관리·기술 문제 모두 드러났다…정작 피해자는 문제 원인 알지 못해 발만 동동

과기정통부는 이번 KT 인터넷 장애가 관리적, 기술적 문제점이 각각 발생했다고 짚었다.

먼저 관리적 문제로는 KT의 작업 관리 체계가 부실한 점이 지적됐다. KT 부산국사에서 이뤄진 작업은 26일 오전 1시부터 진행되는 야간 작업에 속했다. KT 네트워크관제센터는 야간 작업을 승인했지만, 실제 작업에 나선 KT 협력사 직원들이 주간에 작업하면서 인터넷 장애에 따른 피해가 더 커졌다. 해당 작업자를 감독해야 할 KT 작업 관리자의 경우 자리를 비운 것으로 나타났다.

홍진배 과기정통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은 "(작업자가 왜) 주간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야간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기에 주간 작업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확인한 결과 (KT 작업 관리자는) 다른 작업이 있어서 비웠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기술적 문제점으로는 사전 검증 단계에서 오류를 파악하지 못한 점이 지적됐다. 라우팅 설정 명령어 스크립트에서 종료 명령어가 빠졌음에도 스크립트 작성과 사전 검증 과정에서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트워크가 차단된 상태에서 오류 여부를 사전에 발견하기 위한 테스트베드도 없었다. 지역에서 발생한 라우팅 오류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중간 차단 시스템도 부재했다.

KT는 인터넷 장애 발생 이후 피해 대응에서도 문제를 이어갔다.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은 탓에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왜 네트워크 사용에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복구되면서 언론과 정부 발표 등을 통해 사태를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KT는 문제 발생 여부를 문자 등의 대체 수단으로 신속하게 알리지 않았다. 사태가 마무리된 오후에서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사실을 알렸다.

홍진배 과기정통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이 KT 인터넷 장애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 과기정통부
홍진배 과기정통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이 KT 인터넷 장애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 과기정통부
KT 피해 보상안만 바라보는 정부…"통신 재난 발생했지만 책임 물 수 없어"

과기정통부는 KT 인터넷 장애와 같은 통신 재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요통신사업자의 네트워크 생존성과 기술, 구조적 대책을 담은 ‘네트워크 안정성 확보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허성욱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을 단장으로 네트워크 전문가 등을 포함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이같은 방안을 선보일 예정이다.

네트워크 안정성 확보방안에는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이 각각 담길 예정이다. 단기 대책으로는 주요통신사업자인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의 네트워크 관리 체계를 점검하는 방안이 논의된다. 주요통신 사업자가 네트워크 작업으로 인한 오류 여부를 사전에 진단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시스템도 도입한다.

중장기 대책으로는 주요통신사업자의 통신장애 대응 모니터링 체계 강화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네트워크 안정성과 복원력을 높이는 기술 개발과 안정적인 망 구조 등 네트워크 생존성 확보를 위한 구조적 대책 마련 등도 추진한다.

조경식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KT 관리 소홀로 인터넷 장애가 전국적으로 확산해 이용자 피해가 발생했다"며 "과기정통부는 KT 인터넷 장애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다 강화된 개선 방안을 내놓고자 한다"고 말했다.

피해 보상과 관련해서는 KT 결정을 앞두고 있다. KT는 29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인터넷 장애에 대한 피해 보상책을 논했다. 아직 결정 내용이 밝혀진 바 없지만, 전날 구현모 KT 대표가 직접 현행 서비스 약관과 별개로 보상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전국 단위에서 피해 보상이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등이 직접 조처를 할 수 없는 상태다. KT가 서비스 계약에 따라 진행하는 보상 건이기에 현 상황에선 KT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

이소라 방통위 이용자보호과장은 "기업의 계약 문제이기에 정부가 명확히 행보를 하기가 힘든 상황이다"며 "일단 KT가 (보상책을) 내놓는다고 하니 살펴보고 더 살펴야 한다면 협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KT 관리, 감독 부재에 따른 인재로 발생한 전국 단위 피해 사고임에도 정부가 KT에 직접적인 법적 제재를 가할 수도 없다. KT는 정부 허가를 받아 통신 사업을 하는 기간통신사업자이지만, 정부가 이번 사태에 책임을 물 수 있는 법령이 부재한 탓이다.

홍진배 정책관은 "이용자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거나 보상을 하지 않거나,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다만 장애로 인해 피해를 일으켰을 때 제재를 하는 것은 법령을 살핀 결과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KT가 홈페이지를 통해 통신 장애를 고지한 점, 자체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점, 인터넷 장애 발생 후 과기정통부에 이를 신고한 점 등을 봤을 때 현 상황에서 법적 책임을 물을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