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로 고전(古典) 읽기’는 미증유의 사태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고전을 골라서 수회에 나눠 필사하는 캠페인입니다.
이번 주 필사감으로는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데뷔작 《나목(裸木)》을 골랐습니다. 박완서는 40세의 나이에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당선된 이후 15편의 장편 소설과 100편이 넘는 단편 소설, 그 외 많은 산문과 동화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작품활동을 한 ‘영원한 현역 작가’였습니다. 작가 자신이 ‘첫 작품이자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꼽은 《나목》을 필사하면서 그 이유를 찾아보세요. 2012년 세계사에서 나온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을 참조했습니다. /편집자 주
나는 군밤을 질겅질겅 씹으며 마음껏 웃고 침팬지의 율동에 장단을 맞춰 어깨를 흔들었다. 드디어 태엽이 풀리면서 침팬지의 동작은 서서히 느려지고 유쾌한 애주가의 폭음은 부시시 멎었다. 구경꾼들은 하나둘 비어갔다. 흥겨운 시간은 삽시간에 지난 것이다. 침팬지만이 사람들한테 아첨 떨기를 멈추고 한껏 외롭게 서 있었다. 그의 고독이 가슴에 뭉클 왔다. 사람과 동물로부터 함께 소외된 짙은 고독과 절망.
나는 옥희도 씨를 쳐다보았다. 그는 화필을 놓고 하염없이 잿빛 휘장을 바라볼 때처럼 그런 시선으로 침팬지를 보고 있었다. 문득 나는 그도 역시 침팬지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나도 그를 도울 수 없음을. 좀 전의 충족감이 포말처럼 꺼졌다. 나는 그에게서 소리 없이 밀려나 있었다. 침팬지와 옥희도와 나……. 각각 제 나름의 차원이 다른 고독을, 서로 나눌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자기만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중략)
나는 그때까지 찌르고 있던 그의 헐렁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는 날쌔게 혼자 골목길을 들어서서 다시 한 번 꼬부라졌다. 그리고 먼발치로 이지러진 내 집 지붕을 똑바로 바라보며 돌진하듯이 달렸다. 그가 자기만의 고독을 아무에게도 나누려 들지 않듯이 나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나만의 일이 있는 것이다.
긴 골목길을 어제와 조금도 다름없이, 공포와 이제는 거의 육체적인 통증으로 변해버린 아픔을 혼자 견디며 걸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는 나만의 일인 것이다. 저녁을 먹고 왔다고 말하고 곧장 장방형의 내 방으로 들어온 나를 어머니는 따라 들어와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서 주무세요." 나는 참다못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쏴주었다.
▶하루천자 캠페인은?
IT조선은 (사)한국IT기자클럽, (주)네오랩컨버전스, (주)비마인드풀, (주)로완, 역사책방, 기억의책 꿈틀과 함께 디지털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하루천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캠페인은 매일 천자 분량의 필사거리를 보면서 노트에 필사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지난 필사거리는 IT조선 홈페이지(it.chosun.com) 상단메뉴 ‘하루천자'를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두뇌운동! 내가 쓴 하루천자 기록에 남기는 방법은?
- [#하루천자] (122) 필사해 보세요, 김영랑의 시(詩)
- [#하루천자] (121) 김약국의 딸들 ④… 그래도 새롭게 살아갈 사람들
- [#하루천자] (120) 김약국의 딸들 ③… 성수 영감네 다섯 딸
- [#하루천자] (119)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 [#하루천자] (118) 김약국의 딸들 ②… 봉제 영감 외동딸과 봉룡의 외아들
- [#하루천자] (117) 김약국의 딸들 ①… 통영 간창골 김씨 형제
- [하루천자] 우병현 대표가 제안하는 '아나지털' 글쓰기
- [#하루천자] (116) 필사해 보세요, 구자운의 시(詩)
- [#하루천자] (115) 메밀꽃 필 무렵 ④… 밤 벌판에 울리는 방울소리
- [#하루천자] (114) 메밀꽃 필 무렵 ③… 달밤에 맞춤한 이야기
- [#하루천자] (113) 삶을 변화시키는 스몰 스텝 전략
- [#하루천자] (112) 메밀꽃 필 무렵 ②… 동이를 혼내는 허 생원
- [#하루천자] (111) 메밀꽃 필 무렵 ①… 대화 장으로 가기로 한 장돌뱅이들
- [#하루천자] (110) 필사해 보세요, 이동주의 시(詩)
- [#하루천자] (109) 허클베리 핀의 모험 ④… 모험은 계속된다
- [#하루천자] (108) 허클베리 핀의 모험 ③… 두 사기꾼의 만행
- [#하루천자] (107) 일상의 루틴은 마치 닻과 같다
- [#하루천자] (106) 허클베리 핀의 모험 ②… 켄터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 [#하루천자] (105) 허클베리 핀의 모험 ①… 아빠로부터의 탈출
- [#하루천자] (104) 필사해 보세요, 한하운의 시(詩)
- [#하루천자] (103) 나목(裸木) ④… 그가 바로 저 나목처럼 살았음을
- [#하루천자] (102) 나목(裸木) ③…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지만
- [#하루천자] (101) 내가 지닌 것은 모두 남에게 받은 것
- [#하루천자] (99) 나목(裸木) ①… PX 초상화부에 새로 온 환쟁이
- [#하루천자] (98) 필사해 보세요, 조지훈의 시(詩)
- [#하루천자] (97) 레디메이드 인생 ④… 솔드 아웃(sold out)
- [#하루천자] (96) 레디메이드 인생 ③… 아들 창선이
- [#하루천자] (95)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하루천자] (94) 레디메이드 인생 ②… 어쭙잖은 객기의 결과는
- [#하루천자] (93) 레디메이드 인생 ①… 대량생산 인텔리의 일자리 구걸
- [#하루천자] (92) 필사해 보세요, 신석정의 시(詩)
- [#하루천자] (91) 바스커빌가의 개 ④… 마침내 끔찍한 괴물과 맞닥뜨리다
- [#하루천자] (90) 바스커빌가의 개 ③… 황무지 돌집 남자의 정체
- [#하루천자] (89) 이솝 우화… 대중의 어리석음이 거짓 명성의 밑거름
- [#하루천자] (88) 바스커빌가의 개 ②… 상속자 헨리 바스커빌과 동행하게 된 왓슨
- [#하루천자] (87) 바스커빌가의 개 ①… 찰스 바스커빌, 가문의 저주대로 죽다
- [#하루천자] (86) 필사해 보세요, 윤동주의 시(詩)
- [#하루천자] (85) 날개 ④… 한 번만 더 날자꾸나
- [#하루천자] (84) 날개 ③… 아내와 나의 절름발이 사랑
- [#하루천자] (83) 창덕궁 연경당을 아십니까
- [#하루천자] (82) 날개 ②… 아내가 주는 은화, 그것을 넣는 벙어리
- [#하루천자] (81) 날개 ①…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절대적인 상태
- [#하루천자] (80) 필사해 보세요, 기형도의 시(詩)
- [#하루천자] (79) 구운몽 ④… 모두 헛되고 헛될 뿐인 하룻밤 꿈
- [#하루천자] (78) 구운몽 ③… 인간 세상의 모든 재미를 맛보았으나
- [#하루천자] (77) 이중섭의 마지막 편지
- [#하루천자] (76) 구운몽 ②… 양소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
- [#하루천자] (75) 구운몽 ①… 세속의 욕망을 품은 데 대한 벌
- [#하루천자] (74) 필사해 보세요, 정지용의 시(詩)
- [#하루천자] (73) 사랑손님과 어머니 ④… 이제 달걀 안 사요
- [#하루천자] (72) 사랑손님과 어머니 ③… 이상타, 우리 엄마
- [#하루천자] (71) 자존가들 ②… 튼튼한 관계를 위하여
- [#하루천자] (70) 사랑손님과 어머니 ②… 어느 토요일 오후
- [#하루천자] (69) 사랑손님과 어머니 ①… 옥희네 새 하숙생
- [#하루천자] (68) 필사해 보세요, 고정희의 시(詩)
- [#하루천자] (67) 작은 아씨들 ④… 뉴욕에서, 사랑을 담아, 조
- [#하루천자] (66) 작은 아씨들 ③… 어머니는 우리 선생님
- [#하루천자] (65) 추사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준 ‘세한도’
- [#하루천자] (64) 작은 아씨들 ②… 옆집에 사는 로런스
- [#하루천자] (63) 작은 아씨들 ①… 아버지 없는 성탄절
- [#하루천자] (62) 필사해 보세요, 노천명의 시(詩)
- [#하루천자] (61) 365 Thank Yous ④… 세상과 나를 좀 더 착하게 만드는 법
- [#하루천자] (60) 365 Thank Yous ③… 아들에게서 받은 감사편지
- [#하루천자] (59) 한용운이 기다린 당신의 편지
- [#하루천자] (58) 365 Thank Yous ②… 내가 가장 감사해야 할 존재는
- [#하루천자] (57) 365 Thank Yous ①… 나락에서 시작한 감사편지 프로젝트
- [#하루천자] (56) 필사해 보세요, 오장환의 시(詩)
- [#하루천자] (55) 프랭클린 자서전 ④…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 [#하루천자] (54) 프랭클린 자서전 ③… 도덕적으로 완벽해지기 위하여
- [#하루천자] (53) 여명(黎明) 속에서 부처를 만나다
- [#하루천자] (52) 프랭클린 자서전 ②… 소통원칙은 ‘겸손’
- [#하루천자] (51) 프랭클린 자서전 ①… 도서관을 세우고 키우다
- [#하루천자] (50) 필사해 보세요, 신동엽의 시(詩)
- [#하루천자] (49) 천변풍경 ④… 이쁜이 시집가는 날
- [#하루천자] (48) 천변풍경 ③… 마소는 시골로, 사람은 서울로
- [#하루천자] (47) 미래에 먼저 도착한 노르딕… 얀테의 법칙
- [#하루천자] (46) 천변풍경 ②… 이발소 아이와 단골 신사
- [#하루천자] (45) 천변풍경 ①… 청계천 빨래터
- [#하루천자] (44) 필사해 보세요, 손바닥 소설
- [#하루천자] (43) 리진 시선집 ⑤… 나의 눈을
- [#하루천자] (42) 리진 시선집 ④… 흐르는 물같이
- [#하루천자] (41) 리진 시선집 ③… 그립고 그리운 고향
- [#하루천자] (40) 리진 시선집 ②… 늙은 시인의 눈물을 닦아주고파
- [#하루천자] (39) 리진 시선집 ①…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
- [#하루천자] (38) 필사해 보세요, 이태준의 성(城)
- [#하루천자] (37) 파우스트 ⑤…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 [#하루천자] (36) 파우스트 ④… 존재는 의무
- [#하루천자] (35) 파우스트 ③… 파멸이라는 이름의 사랑
- [#하루천자] (34) 파우스트 ②… 노(老)학자, 사탄과 계약하다
- [#하루천자] (33) 파우스트 ①… 어느 특별한 내기
- [#하루천자] (32) 내 장례식에 오신 분들께 알림
- [#하루천자] (31) 로빈슨 크루소 ⑤… 나는 이 섬의 왕
- [#하루천자] (30) 로빈슨 크루소 ④… 다른 인간의 존재가 주는 충격파
- [#하루천자] (29) 로빈슨 크루소 ③… 각성 혹은 기도
- [#하루천자] (28) 로빈슨 크루소 ②… 도구의 인간, 생활을 설계하다
- [#하루천자] (27) 로빈슨 크루소 ①… 무인도 생활의 시작
- [#하루천자] (26) 필사해 보세요, 김수영의 시(詩)
- [#하루천자] (25) 그리스인 조르바 ⑤… 여러 이름으로 삶은 이어지고
- [#하루천자] (24) 그리스인 조르바 ④… 거덜난 사업, 춤으로 화(化)하다
- [#하루천자] (23) 그리스인 조르바 ③… 삶의 비밀을 드러내는 말과 몸짓
- [#하루천자] (22) 그리스인 조르바 ②…이런 게 '자유'
- [#하루천자] (21) 그리스인 조르바 ①… 크레타를 향하여
- [#하루천자] (20) 필사해 보세요, 이상화의 시(詩)
- [#하루천자] (19) 문장강화 ⑤… 고치고 또 고쳐쓰자
- [#하루천자] (18) 문장강화 ④… 글을 제대로 맺으려면
- [#하루천자] (17) 문장강화 ③… 어떻게 시작할까
- [#하루천자] (16) 문장강화 ②… 무엇을 쓸 것인가
- [#하루천자] (15) 문장강화 ①… 말과 글은 다르다
- [#하루천자] (14) 필사해 보세요, 백석(白石)의 시(詩)
- [#하루천자] (13) 나는 달린다 ⑤... 나 자신을 향해 달린다
- [#하루천자] (12) 나는 달린다 ④... 외면의 변화로 내면 혁신의 진척 확인
- [#하루천자] (11) 나는 달린다 ③...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다
- [#하루천자] (10) 나는 달린다 ②... 과도한 내 몸무게는 내 습관의 결과물
- [#하루천자] (9) 나는 달린다 ①...달리기를 통한 자기개혁 이야기
- [#하루천자] (8) 필사해 보세요, 이태준의 수선(水仙)
- [#하루천자] (7) 알싸한 화해… 동백꽃 ⑤
- [#하루천자] (6) 정녕 닭싸움이 문제일까… 동백꽃 ④
- [#하루천자] (5) 애먼 닭이 고생… 동백꽃 ③
- [#하루천자] (4) 점순이가 왜 그럴까…동백꽃 ②
- [#하루천자] (3) 필사해 보세요, 동백꽃 ①
- [#하루천자] (2) 101주년 삼일절…3·1 독립선언서 ②
- [#하루천자] (1) 함께 써 봅시다, 3·1 독립선언서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