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영 테르텐 대표 "항상 베풀던 아버지 싫었는데 어느새 닮아가"
3년 전 기술벤처 엔젤투자 집단 ‘Y얼라이언스’결성
이 대표 제안에 CEO와 전문가 20명 기꺼이 동참
기존 벤처캐피탈과 다른 접근, ‘수익률보다 가능성 방점’
내년 첫 상장 기업 결실 눈앞젊은 창작인 투자 추진

"아버지께서는 평생 누군가를 돕고자 했어요. 집안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쌀 한 톨만 생기면 가난한 이웃을 찾아가시곤 했죠. 어머니께서 명절에 고기를 사 오시면 아버지께서 조용히 들고나가 이웃과 나눌 정도였으니까요."

이영 테르텐 대표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음에도 항상 베풀기만 했던 아버지가 싫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아버지처럼 자신도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돕고 있다.

이영 대표는 사이버보안 전문 기업인 테르텐을 이끌며 ‘Y 얼라이언스 인베스트먼트(Y-alliance Investment)’를 운영한다. Y 얼라이언스는 기술 집약적인 벤처 기업의 초기 인큐베이팅과 성공을 지원하고자 선배 기업인과 전문가가 모인 집단이다. 신생 벤처 기업에 초기 엔젤 투자(벤처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주식으로 대가를 받는 투자 형태)와 시장 개척, 기업 운영에 필요한 여러 지원을 제공한다.

그는 "벤처 1세대 기업인으로서 보안 회사를 일구며 고생이 많았다. 힘들었던 만큼 후배 기업인들은 어려움이 없게끔 도움을 주고자 Y 얼라이언스를 꾸리게 됐다"며 "아버지께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집중했다면 나는 무언가 도전하고 열정을 쏟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DNA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영 테르텐 대표. Y 얼라이언스 대표이기도 하다. / 김평화 기자
이영 테르텐 대표. Y 얼라이언스 대표이기도 하다. / 김평화 기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생 기업의 가능성만 보는 VC

이영 대표가 Y 얼라이언스의 첫 발을 뗀 계기는 우연했다. 2016년 당시 기술 벤처계가 처한 여러 어려움을 보며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선배 기업인이 후배를 지원하는 기회를 고민하던 차였다. 우연히 정부 행사에서 만난 박성태 당시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이 대표의 고민을 듣고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이 대표가 Y 얼라이언스 초석을 닦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 대표의 고민에 동의하는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20명의 CEO와 머리를 맞대고 ‘선한 사람들의 건강한 자금, 따뜻한 투자’를 표방하는 Y 얼라이언스를 세상에 내놨다.

Y 얼라이언스는 유망 벤처 기업의 사업 설명회인 피칭데이(Pitching Day)를 개최하며 사업 시작을 알렸다. 2018년에는 40여 개 신생 벤처기업 중 선별된 회사에 벤처 투자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한 바이오 회사는 Y 얼라이언스의 도움으로 2020년 상반기에 기술 특례 상장을 진행한다. Y 얼라이언스의 첫 번째 성공 레퍼런스다.


기술 벤처 기업에 투자와 지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털(VC)’ 외양을 갖춰야 했기에 중소기업벤처부에 관련 승인도 받은 상태다. Y 얼라이언스 참여 기업인이 엔젤 투자를 지원한다면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의 Y 얼라이언스 참여 전문가는 어드바이저로서 신생 벤처 기업을 돕는다.

하지만 기존의 VC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VC처럼 수익률을 극대화하고자 한다든지 투자 레퍼런스를 늘린다든지 해서 그들과 경쟁할 생각이 없다"며 "지속 가능한 벤처 생태계를 일구고자 신생 스타트업을 발굴해 돕고 멘토링 등의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Y 얼라이언스의 혜택은 조건에 묶이지 않는다. 기술을 갖춘 신생 벤처 기업이라면 분야 구분 없이 지원 조건에 부합한다. 실제 Y 얼라이언스의 도움을 받은 기업은 바이오부터 소재, 전자 제어, 서비스 등 다양하다. 기업 대표의 나이나 다른 특정 조건에서도 자유로운 점이 이 대표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Y 얼라이언스가 밝힌 분야별 투자 계획. / Y 얼라이언스 홈페이지 갈무리
Y 얼라이언스가 밝힌 분야별 투자 계획. / Y 얼라이언스 홈페이지 갈무리
Y 얼라이언스가 ‘선한' 사람들의 모임임을 강조한 이유

이영 대표가 Y 얼라이언스를 구상하게 된 근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대한민국에서 기술 벤처를 운영한다는 게 너무 힘들다"는 사실을 밝히며 도움을 주게 된 배경을 짚었다.

한국소프트웨어(SW)정책연구소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SW 회사 중 창업 후 5년 안으로 폐업하는 비율은 57.6%에 달한다. 20년 이상 기업을 유지하는 비율도 0.3%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소프트웨어 콘텐츠 가치가 너무 낮다"며 "많은 업체가 창업 후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설명했다.

이영 대표가 운영하는 테르텐도 높은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여러 번 위기를 겪어야 했다. 창업 초기 유명한 투자가를 통해 기관 투자를 받았으나 이내 적대적 인수합병을 겪은 게 일례다. 해당 투자가는 알고 보니 기업사냥꾼이었다.

이 대표는 "투자 용어조차도 제대로 모르던 때에 위기를 겪으며 창업한 회사를 끝끝내 지켰지만 이미 회사는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다시 시작하는 비용보다 재건 비용이 더 많이 들어 고통스러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경험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세상에는 건강하지 못한 돈도 많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며 "Y 얼라이언스가 ‘선한’이라는 용어를 표어에 붙이면서 신생 벤처 기업을 돕고자 하는 이유가 다 이런 경험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Y 얼라이언스는 신생 기업이 이같은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돕는다. 아낀 시간과 비용으로 대신 회사의 성장 기회를 높이도록 이끈다. 신생 기업에 세일즈 인큐베이팅도 제공한다. 2년 반 동안 신생 벤처 5곳과 함께 직접 영업을 뛰고 마케팅을 한 것이 일례다. 이 대표는 "가격을 책정해줄 뿐 아니라 테르텐의 고객 데이터베이스(DB)도 공유해 기업 브랜드와 제품 인지도를 높이고자 같이 뛰었다"고 설명했다.

Y 얼라이언스의 지원과 후원을 받는 스타트업들. / Y 얼라이언스 홈페이지 갈무리
Y 얼라이언스의 지원과 후원을 받는 스타트업들. / Y 얼라이언스 홈페이지 갈무리
"생긴 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Y 얼라이언스는 올해 안으로 1호 펀드를 만들 예정이다. 전형적인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젊은 창작인을 위한 투자를 진행한다. Y 얼라이언스만의 색깔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건강한 벤처 생태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책임감 아래 Y 얼라이언스 대표를 맡고 있다"며 "언제든 역량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자리를 넘겨드리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그는 이어 "내가 조금 더 먼저 간 길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조했다.

"제게 남을 돕는 DNA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여성벤처협회나 Y 얼라이언스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일이 제 DNA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쩔 땐 제 회사 일보다도 먼저 챙길 정도니까요. 앞으로도 후배 기업인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