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규제를 푼다고나 하질 말던가

입력 2019.11.28 16:01 | 수정 2019.11.29 13:37

문재인정부 혁신경제와 규제완화에 설렌 기술벤처
기대가 실망으로, 이제 분노까지
"한국이 싫어서" 고객과 투자자 찾아 해외로
동남아 기업 선도는커녕 추격도 힘들어
현실은 갈수록 암울한데 여전히 공허한 약속만

벤처산업계는 문재인정부에 우호적인 편이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성향 자체가 그렇다.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기보다 모험 한번 해보겠다는 벤처인들이다.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성향이 짙다. 기득권에 대한 저항도 바탕에 깔렸다. 그 반감은 벤처를 하며 더 커지기도 한다. 기득권의 높디높은 장벽을 체감하면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다.

벤처행이 선택이 아닌 사람도 제법 있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인재상이 아니거나 ‘자격’이 안 돼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에 취업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어쩔 수 없이 벤처행을 택할 수 밖에 없다. 2000년 전후 벤처 붐 때 학생 운동권 출신 벤처인이 많았던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경영자보다 노동자. 기득권층보다 그 반대편을 중시하겠다는 문재인정부다. 벤처인과의 심정적 교집합은 이전 이명박, 박근혜정부보다 훨씬 넓다. 기술벤처라면 더욱 그렇다. 기술벤처를 무시하다시피했던 이명박정권과 가장 대척점에 선 현 정권이 아닌가.

문재인정부에 대한 벤처인들의 기대는 그래서 컸다. 무엇보다 혁신벤처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 전환과 공정한 룰 아래 맘껏 뛰놀 수 있으리라 믿었다. 설렜다.

2년 반이 지났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제 화까지 낸다. 정부의 ‘타다’ 규제가 기폭제다.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한 혁신·벤처 단체들은 이달 초 검찰의 ‘타다’ 기소 관련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검찰 기소가 한국 혁신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비판했다.

벤처산업계가 보는 우리 현실은 이렇다. 민간 혁신과 신산업 창업 의지를 꺾는다. 기존 전통산업과 기득권을 위한 규제에 가로막혀서다. 정부 규제 완화와 필요한 사회적 합의는 늦다. 행정과 입법은 기술발전 속도와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말로는 창업과 신산업을 육성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짓누르고 틀어막는다. 싹도 트기 전에 사업을 바꾸거나 접어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언감생심이다.

타다 관계자는 사법처리까지 받는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행정, 입법에 사법까지 모두 못살게 굴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무슨 혁신이냐"고. 맞다. 그다지 혁신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때 불법영업으로 지탄을 받았던, 이른바 ‘나라시’도 떠오른다. 외국에선 이미 대중화 단계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 인공지능(AI) 등 타다측도 할 말은 많겠지만 혁신이 아니라고 치자.

그런데 ‘타다가‘혁신이냐 아니냐’는 규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주제다. ‘불법이냐 아니냐’라면 모를까, 왜 규제를 하냐마냐에 혁신 여부를 가려야 하나. 정작 매우 상관 있는 소비자 권리와 선택권 침해 여부에 대한 논쟁은 전혀 없다.

타다가 혁신은 아닐지라도 불법은 아니다. 국회가 타다를 규제하는 쪽으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려 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당장은 불법이 아니라는 얘기 아닌가.

법 개정을 주도한 박홍근 더블어민주당 의원은 28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타다는 편법을 넘어 불법이라고 본다. 대법원에 가더라도 백전백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법원이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박의원은 어떻게 할 건가. 법 개정 자체가 결국 잘못 아닌가. 판결 예상이야 자유지만 나오지도 않은 판결 전망을 법 개정 명분으로 삼는 게 맞나. 사법 판단이 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나.

무엇보다 소비자는 타다를 원한다. 택시 서비스 불만 때문인지 값은 비싸도 타다가 편하고 좋다는 이용자 반응이 많다. 승차 거부도 없이 안전 운전을 해온 선의의 택시 기사와 사업자들은 억울하겠다. 도매금으로 욕을 먹으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시장의 판단이다.

편법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어쨌든 타다는 실정법을 지켰다. 세금도 냈다. 당장 책임을 물을 게 없다.

벤처산업계가 성명서를 내며 집단 반발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성명서는 "‘규제공화국’이라 불리는 거미줄 규제환경에서 힘겹게 합법적 영업을 영위 중인 혁신 기업의 서비스를 위법으로 판단한다면, 현행 포지티브 규제환경하에서의 신산업 창업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 지적은 타다뿐만 아니라 벤처기업, 심지어 대기업에도 해당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규제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 그대로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규제를 벗어나고자 기업들은 발버둥치지만 여의치 않다./IT조선
벤처산업계가 26일 또한번 성명서를 냈다. 이노비즈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16개 벤처단체와 함께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를 통해서다. 이번엔 데이터 규제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인 ‘데이터 3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강력히 촉구했다. 협의회는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는데 1년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데이터 활용 법적 근거인 ‘데이터 3법’이 국회에 묶였다"라며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와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의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같은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비슷한 말을 했다. 국회가 "미래 먹거리와 관련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데이터3법 처리 지연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 회장은 "데이터 산업은 미래 산업의 원유(原油)라고 하는데 원유 채굴을 아예 막아놓은 상황이나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상의 회장 발언이니 혁신벤처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기업이 데이터 규제를 걸림돌로 여기는 셈이다.

비판 여론이 쏟아지면서 그 이튿날 국회는 데이터3법의 모법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신용정보법도 그 다음날 법안소위 심의를 통과했다. 정보통신망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데이터 3법의 내용은 ▲개인정보·가명정보·익명정보의 정의와 금융 빅데이터 분석·이용의 법적 근거 명확화 ▲전문기관의 승인 아래 결합 정보 활용 허용 ▲개인정보 관련 감독 기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 등이다. 다 기업의 데이터 활용에 반드시 필요한 조항들이다.

더욱이 지금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시대다. 박회장의 말대로 미국과 중국, 일본은 일찌감치 데이터 관련 규제를 앞서 풀며, 기업들은 미래 먹거리를 찾아가는데 정작 우리나라만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한다.

사업은커녕 연구목적 데이터 활용 길마저 막혔다. 미국 연구기관도 탐을 낸다는 조선대의 국책 치매연구 데이터를 개인정보 규제 탓에 광주 이외 지역의 연구기관은 활용할 수 없다는 조선비즈의 보도내용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데이터3법을 이번에 처리하지 못하면 하릴없이 또 몇년을 손놓고 기다려야 한다. 워낙 여론이 들끓었으니 아마도 국회는 어떻게든 처리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정부와 국회의 규제완화 약속만 믿고 사업을 준비해온 기업들이 받은 물적, 심적 피해를 도대체 누구로부터 보상받을 것인가. 더 답답한 것은 규제 하나를 풀어도 더한 규제가 나오는 악순환은 앞으로도 고쳐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외국이라고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우리보다 훨씬 더한 규제도 있다. 그래도 선진국 중 우리나라처럼 신사업 규제가 심한 나라는 없다. 규제 예측마저 어려운 나라는 더더욱 드물다.

요즘 일부 기술벤처기업인들은 아예 한국이 아닌 해외부터 사업을 하려 한다. 작은 시장, 높은 진입 장벽과 꽉 막힌 규제에 시달릴 바에야 차라리 힘들어도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다. 사업 성공 가능성은 떨어질지라도 사업 환경 예측 가능하다면 차라리 외국이 낫다는 판단이다.

어디 모빌리티와 데이터법 뿐인가. 블록체인과 핀테크, 원격의료, 바이오, 드론, 숙박공유 서비스까지 신산업을 둘러싼 규제는 수두룩하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풀릴지도 ‘깜깜이’다.

벤처업계가 데이터법 통과를 촉구한 날,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아세안 스타트업 서밋’을 찾았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과 기업인들에게 "한국은 대기업 중심 경제에서 혁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중심 경제로 탈바꿈하고,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가기 위해 신산업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아세안 스타 스타트업 4개사를 일일이 소개했다. 필리핀 '레볼루션 프리크래프티드'(필리핀), ‘고젝’(인도네시아), 그랩(싱가포르), '북미버스'(캄보디아)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관심을 받는 스타트업들이다. 공교롭게도 조립주택업체인 '레볼루션 프리크래프티드'를 뺀 세 회사 모두 승차공유업체다.

특히 그랩과 고젝은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을 넘어 데카콘(100억 달러 이상) 업체다. 택시호출과 차량렌탈은 물론 음식배달, 모바일결제 사업까지 다 한다. 우리로 치면 카카오택시, 카카오모빌리티, 타다, 배달의민족 등의 사업을 다 합쳐놓은 식이다. 이들 기업이라고 받는 규제가 없었겠냐마는 우리나라처럼 격렬한 이해관계자 반발과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 스타트업 대표들 앞에서 "스타트업은 그 자체로 '혁신'이며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이고 '희망'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세안이 가는 스타트업의 길에 한국이 동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공허하다. 이제 선도는커녕 따라갈 스타트업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가능성 있는 기업마저 하나둘 사라져갈 판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 때문이라면 이처럼 허망한 일은 없다. 애초에 규제를 확 풀겠다고 약속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벤처기업인들이 지금처럼 허탈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 현 정부가 폐지 공약까지 내걸었던 액티브엑스(Activ X)는 지금 어찌 됐나 몰라.
희극인들이 액티브X를 주제로 만든 코믹 영상. 웃긴데 뒷맛은 씁쓸하다./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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