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인 ‘M1’을 맥북과 아이맥 등에 탑재한다. 15년간 지속된 애플과 인텔의 허니문도 끝났다. 6년째 애플과 거래가 없었던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과거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M1 칩 전량 생산을 맡은 대만 TSMC가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을 삼성전자가 차지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와 애플 로고/ 각사
삼성전자와 애플 로고/ 각사
애플은 11일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이라는 이름만 알려진 자체 개발 프로세서의 첫 모델 M1을 공개했다. M1은 최신 5나노(㎚) 공정으로 제조된다. CPU와 GPU는 물론 뉴럴 엔진, 보안 칩, 각종 입출력 컨트롤러 및 메모리까지 하나의 단일 칩으로 통합한 시스템 온 칩(SoC) 방식의 통합 프로세서다.

반도체 업계 일각에서는 애플의 M1 칩 물량 중 일부가 삼성전자 파운드리로 넘어올 가능성을 제기한다. TSMC가 5나노 이하 미세공정 생산능력의 대부분을 애플 아이폰12 시리즈에 적용할 칩 생산에 활용하고 있어서다.

애플의 M1 칩은 5나노 이하 미세공정으로 만든다. 이를 만들 수 있는 업체는 세계에서 삼성전자와 TSMC가 유이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뿐만 아니라 PC 라인까지 자체 설계를 시작하면서 TSMC가 현재 생산능력만으로는 공급에 힘에 부치는 상황에 놓였다"며 "애플이 원활한 제품 출시를 위해 공급업체를 다변화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애플 실리콘 M1의 주요 특징을 정리한 다이어그램 / 애플
애플 실리콘 M1의 주요 특징을 정리한 다이어그램 / 애플
하지만 애플이 삼성전자에 불가피하게 M1 칩을 주문하더라도 거래 관계를 지속할 가능성은 낮다. 애플이나 삼성전자에 모두 ‘불편한 동맹’이 될 뿐이어서다.

애플은 2015년 ‘칩게이트 논란’을 기점으로 삼성전자를 배제하고 TSMC에 칩 생산을 몰아줬다. 칩게이트는 삼성전자 A9 탑재 버전의 아이폰6S 배터리 수명이 TSMC A9 탑재 버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으로 애플은 TSMC가 삼성전자의 14나노 공정기술보다 뒤처진 16나노 공정기술력을 갖췄음에도 TSMC 생산 A9칩 성능이 삼성전자 A9칩보다 일부분 앞선다는 평가를 내렸다. 스마트폰 시장 경쟁자인 삼성전자에 물량을 맡기지 않으려 내린 결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TSMC는 애플의 주문량 증대를 감안해 5나노 이하 파운드리에서 대규모 설비 투자에 돌입했다. TSMC는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151억달러(16조8200억원) 규모 설비 투자를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TSMC는 5나노 공정 생산능력을 연내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9만장, 2021년 1분기 10만장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애플의 M1 칩 위탁 물량 전량을 차질 없이 조기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가 무리해서 경쟁사의 위탁 물량을 확보하려 들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엔비디아 GPU, IBM CPU 등을 잇따라 수주했다. 퀄컴 스냅드래곤 시리즈도 일부 생산 중이다. 오랜기간 거래가 끊긴 애플의 물량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7나노 이하 미세공정에 어려움을 겪는 인텔의 주문을 받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박재홍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부사장은 10월 29일 열린 ‘삼성 파운드리 SAFE 포럼 코리아 2020’행사에서 "삼성 파운드리는 파트너와 절대 경쟁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는 TSMC의 영업전략인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와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애플과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