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반도체와 IT, 컴퓨팅 업계에서 ‘인텔(Intel)’의 이름은 큰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1968년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창립한 인텔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PC와 정보화 시대, 그리고 ‘디지털 변혁’을 이끌어 온 중요한 위치에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의 인텔 본사에 위치한 ‘인텔 뮤지엄(Intel Museum)’에서는 지금까지 인텔의 55년 역사들 중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사내 역사 기록 관리 수준에서 시작된 이 ‘인텔 뮤지엄’ 은 1992년부터 외부인에 공개됐다. 코로나19 이후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2022년 7월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이 ‘인텔 뮤지엄’에서는 인텔의 출발과 초창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하고 출시한 초기 제품들, IBM PC의 출발을 함께 한 8088 CPU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인텔의 상징으로도 여겨지는 ‘무어의 법칙’이나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의 역사도 만나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 ‘통합전자’ 인텔의 시작과 PC 산업의 태동기
인텔은 잘 알려진 대로 1968년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창립했으며, ‘앤디 그로브(Andy Grove)’가 합류하면서 회사의 초기 구도를 갖췄다. 사실 인텔(Intel: Integrated Electronics)의 사명은 처음에는 창립자 두 명의 이름을 따서 ‘무어 노이스(Moore Noyce)’ 가 될 수도 있었지만, ‘More Noise’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제안은 폐기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인텔의 첫 제품은 3101 SRAM(Static Random Access Memory)이였고, 이후 1969년에는 실리콘 게이트와 MOS(metal oxide semiconductors)가 적용된 첫 상업용 제품인 ‘1101 SRAM’을 선보였다. 이렇게 인텔은 초창기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모두를 다뤘지만, SRAM 등 메모리 반도체는 1985년을 기점으로 정리했다.
인텔이 선보인 첫 마이크로프로세서는 1971년 선보인 ‘4004’로, 일본 비지컴(Busicom)의 계산기에 사용됐다. 이 시기 선보인 중요한 제품으로는 EPROM(electrically programmable read-only memory)이 있는데, 읽기 전용 메모리지만 극자외선(EUV)을 비추면 기록된 내용이 지워져 재기록을 할 수 있는 방식이였다. 이 재기록 가능한 EPROM의 등장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한 시스템 설계를 좀 더 쉽고 빠르게 해 주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인텔은 1972년 8비트 프로세서 ‘8008’, 1974년 8비트 프로세서 ‘8080’을 선보였다. 8080은 MITS의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 8800(Altair 8800)’에 사용됐는데, 이 ‘알테어 8800’은 빌 게이츠(Bill Gates)와 폴 앨런(Paul Allen)이 알테어의 베이직(BASIC) 인터프리터를 만들어 납품하고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세우는 계기가 됐다. 한편 이 8080은 MSX로 유명한 자일로그의 Z80과도 많은 부분이 유사한데, 이는 핵심 개발자가 동일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인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히는 시기는 바로 16비트 프로세서 ‘8086’을 처음 선보인 1978년이다. 이 ‘8086’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x86 프로세서의 역사가 시작된다. 변형 모델로는 외부 버스 폭을 8비트로 줄인 ‘8088’이 있었고, 1981년 선보인 IBM PC(모델 5150)에는 이 8088이 사용됐다.
한편, 인텔은 지난 2018년 ‘8086’의 출시 40주년을 맞아 기념 프로세서 ‘코어 i7-8086K’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 8세대 코어 프로세서의 최상위 모델인 ‘코어 i7-8700K’를 기반으로 전 세계 5만 개의 한정 수량으로 구성된 이 제품은 인텔의 팬들에게는 꽤 기념비적인 제품이기도 하다. 동작 속도 또한 기본 동작 속도 4GHz, 최대 동작 속도 5GHz로, 8086의 5MHz 동작속도에 대한 오마주로도 해석된다.
이후 인텔은 32비트 프로세서 ‘80386’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열어 나갔고, 1993년 슈퍼스칼라(superscalar) 아키텍처를 채택한 ‘펜티엄(Pentium)’ 프로세서, 1995년 비순차적 실행을 도입한 ‘펜티엄 프로(Pentium Pro)’ 프로세서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펜티엄’ 시대를 열었다. 펜티엄 이후 인텔의 프로세서 제품명은 번호가 아니라 ‘브랜드’로 바뀌었는데, 숫자로 된 모델명은 지적재산권 보호를 받지 못했었지만 문자로 된 브랜드는 지적재산권 보호가 가능해 마케팅 측면에서도 차별화가 가능해졌다.
인텔 뮤지엄에는 펜티엄 이후 ‘펜티엄 2’, ‘펜티엄 3’, ‘펜티엄 4’, ‘코어 2 듀오’와 초대 ‘코어 i’ 시리즈로 이어지는 2000년대 후반까지의 프로세서들이 전시돼 있다. 이 기간동안 인텔의 프로세서는 ‘1GHz’ 동작 속도를 훌쩍 넘었고, ‘나노미터’ 제조공정 시대에 진입했으며, 하나의 프로세서에 코어가 두 개 이상 들어간 ‘멀티 코어’ 프로세서 시대를 열었다. 이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마지막 프로세서는 ‘네할렘(Nehalem)’ 아키텍처 기반 초대 코어 프로세서로, 45nm High-K 제조 공정으로 만들어졌다.
◇ 인텔의 상징, ‘무어의 법칙’ 과 ‘인텔 인사이드’
인텔의 정신적 상징이자 기업 정신이라면 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꼽힌다. 사실 이 ‘무어의 법칙’은 시대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달라져 왔고, 현재는 이 법칙이 달성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인텔은 지속적으로 이 ‘무어의 법칙’을 이어 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어의 법칙은 약 2년마다 최소한의 비용 증가로 반도체 집적회로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숫자가 두 배씩 증가한다는 관측이다. 고든 무어는 1965년 전자공학 잡지 38권 8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향후 10년 간 매년 트랜지스터가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후 10년 뒤인 1975년, 고든 무어는 이를 2년 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고 수정했다. 새로운 트렌드를 기반으로 한 이 추정치는 약 60년 가까이 반도체 산업의 기본 원칙이 되어 왔다.
한편, 이 ‘무어의 법칙’은 과학적인 법칙이 아닌 경험적 관찰에 따른 트렌드 예측이자, 혁신을 위한 사회적 기준에 가까운 존재다. 고든 무어 자신도 무어의 법칙이라는 명칭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그의 논문에 ‘무어의 법칙’이란 용어를 포함한 바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고든 무어는 지난 3월 24일 하와이 소재 자택에서 작고했지만, 고든 무어가 제시한 법칙은 여전히 반도체 업계의 혁신 달성에 중요한 기준으로 남아 있다.
한편, PC 사용자들에 있어 인텔의 존재를 각인시킨 계기라면 역시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마케팅 프로그램이 꼽힌다. PC 시장의 초창기에는 인텔의 8088, 80286 프로세서 등을 라이선스 생산하는 업체도 제법 많았고, 인텔은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브랜드의 ‘프리미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에 인텔은 286 시절 이후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왔고, 1991년 처음 선보인 ‘인텔 인사이드’ 프로그램은 이후 ‘펜티엄’의 등장과 함께 인텔이 PC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캠페인의 등장은 PC 시장의 판도를 크게 흔들었는데, PC용 x86 프로세서 시장의 판도 뿐 아니라 완제품 제조사의 판도도 이 캠페인의 참가 여부에 따라 달라질 정도였다.
이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 프로그램은 PC 업체들의 완제품 PC에 ‘인텔 인사이드’ 스티커를 붙이고 마케팅 프로그램에 로고를 노출하면서, PC 내에 프로세서의 중요성과 인텔 프로세서 탑재 여부를 강조한다. 인텔은 이러한 마케팅 캠페인의 진행에 있어 일부 비용을 지불하면서, 파트너의 광고 비용 부담을 줄였다.
‘인텔 인사이드’의 흔적은 우리 주위에 여전히 다양한 방법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많은 완제품 PC에는 탑재된 프로세서를 상징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이 스티커는 당시 ‘인텔 인사이드’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기도 하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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