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콘텐츠 소비에 있어, 디스플레이 크기는 보통 ‘거거익선’이다. 품질이 어느 정도의 ‘선’만 지켜주면, 크기에서 오는 충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크기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한없이 커질 수 없다. 여기에는 기술적 제약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현실의 ‘공간’ 문제로 귀결된다. 또한 여기에 ‘이동성’이란 게 겹치면 더 복잡해지는데, 현실적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스크린 크기는 기껏 해야 20인치 전후가 한계가 아닐까 싶다.

들고 다닐 수 있는 대형 디스플레이를 위한 시도는 지금까지 제법 여러 번 나타났다. 이 중에는 문제 해결을 위한 발상의 전환도 있는데, ‘VR(증강현실)/AR(가상현실) 헤드셋’은 실제 공간과 무관하게 아주 큰 화면을 가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물론 여전히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고, 좀 더 가격대가 내려가고 소형화되어야 하며, 품질도 좀 더 개선해야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레노버가 선보인 ‘리전 글래스’는 이 VR/AR 헤드셋과도 접근 방법을 달리했다. 일단 레노버는 이 ‘리전 글래스’에 VR이나 AR을 연결시키지 않고 ‘프라이빗 디스플레이’를 표방한다. 이 덕분에 여러 가지를 덜어낼 수 있었고, 비교적 간단한 구조를 갖춘 가벼운 ‘안경’ 형태의 디바이스로 탄생했다. 기대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프라이빗 디스플레이’라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의 구성으로 최대한의 경량화를 추구한 리전 글래스의 외관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최소한의 구성으로 최대한의 경량화를 추구한 리전 글래스의 외관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안경’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광학계도 필요최소한만 남겼다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안경’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광학계도 필요최소한만 남겼다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리전 글래스의 외관은 ‘안경’ 형태다. 무게는 96g으로, 안경으로 생각하면 무겁지만 헤드 마운트나 웨어러블 장치로 생각하면 꽤나 파격적인 가벼움이다. 프레임은 좀 굵은 편이고, 약간의 탄성을 갖춰 실제 쓰고 벗는 상황에서의 편의성과 내구성 등도 충분히 고려했다. 유선 케이블은 착용했을 때 케이블로 인한 무게감을 최소화할 수 있게 안경 다리 쪽에 있다. 

리전 글래스의 안쪽에서 볼 수 있는 광학 계통 구성은 ‘단순함’이 특징이다. 내부에는 양 눈에 마이크로 OLED 기반 디스플레이 장치를 사용해, 사용자에게는 FHD(1920x1080)급 화면을 보여준다. 이 광학계는 언뜻 보기엔 압축하지 않은 렌즈처럼도 보이고, 마이크로 OLED 같은 핵심 부품들은 모두 손이 닿지 않게 숨겨져 있다.

리전 글래스는 제품의 경량화를 위해 필수 광학계 이외에는 제법 많은 것을 생략한 모습이다.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은 대안 렌즈의 광학 조절 부분의 생략이다. 이에 안경을 쓰지 않는 사용자라면 리전 글래스를 바로 사용할 수 있지만, 안경을 쓰고 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안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패키지에 함께 들어 있는 렌즈 프레임에 알맞은 렌즈를 가공해서 장착한 다음, 이를 리전 글래스에 장착해야 제대로 화면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광학 구성은 리전 글래스의 경량화, 소형화에 큰 기여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경을 쓰는 사용자에게는 안경점에서 추가 렌즈를 사는 번거로움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물론 꼭 고급 렌즈를 쓸 필요도 없고, 취향에 따라 초저가에서 고급 렌즈까지 선택의 폭이 넓은 부분은 장점이다. 또한 이렇게 개인화된 구성은 사용자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안경을 쓰는 사용자라면, 리전 글래스 사용 전 안경점을 한번 들러야 할 것이다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안경을 쓰는 사용자라면, 리전 글래스 사용 전 안경점을 한번 들러야 할 것이다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리전 글래스의 설치는 딱히 설치랄 것도 없이, DP(디스플레이포트) 얼터너티브 모드를 지원하는 USB-C 포트에 케이블을 끼우면 새로운 모니터로 인식돼 화면이 나온다. 표준 디스플레이포트 1.2 규격을 사용하는 만큼, 꼭 ‘리전 고’가 아니더라도 PC나 노트북, 외부 모니터 출력이 가능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에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지원되는 기기에 리전 글래스를 연결한 뒤 착용하면, 눈 앞에 제법 큰 디스플레이가 보인다. 기대에 따라서는 제법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대략 느낌은 거실에서 60~80인치 디스플레이를 몇 미터 거리에서 보는 느낌이나, 아이맥스 수준의 극장 스크린을 맨 뒷열에서 보는 정도의 느낌을 받는다. 해상도는 FHD(1920x1080) 급인데,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PC 사용시 1m 이내에서 모니터를 보는 정도의 디테일은 아니다. 

한편, 이 리전 글래스의 특징은 다른 VR 헤드셋 등과 달리 광학적인 왜곡이 적은 반듯한 평면 화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디테일 또한 광학계의 특성상 조금 뭉개지는 측면이 있지만 제법 잘 살아있는 모습이다. 화면을 더 크게 보이기 위한 노력도 딱히 없는데, 글래스 내부에서의 크기나 초점 조절 기능도 생략됐다. 이는 대안 렌즈를 아예 외부 장착식으로 만든 데서 짐작할 수 있을 부분이다. 

리전 글래스의 ‘몰입감’은 기대 이상이다. 시야를 꽉 채우는 몰입감은 아니지만, 주변의 밝기나 상황 등과 격리돼 오롯이 혼자만의 스크린을 즐길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다. 하지만 리전 글래스를 장착하면 주변을 보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 대중교통으로 장시간 이동할 때나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용도로는 좋지만, 기존의 모니터 대용으로 사무용이나 생산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데는 그리 적합치 않아 보인다. 

리전 글래스의 국내 공식 가격은 49만9000원이다. 지난 IFA때 발표한 가격을 생각하면, 환율을 고려할 때 제법 훌륭한 가격으로 등장했다. 작은 기기와 함께 매칭하는 큰 화면이란 매력에서는 충분히 매력 넘치는 제품이다. 특히 설치와 착용, 휴대까지 모두 편리하다는 점에서 기존 헤드마운트형 디스플레이에 부담을 느끼던 사용자들에게는 반가운 제품이 될 것 같다.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