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에게 ‘언제 어디서나 즐기는 고성능 게이밍’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이상향 같은 의미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당대의 최신 게임을 작은 크기의 디바이스로 즐기려면 소비전력과 쿨링 등 물리적 한계를 마주한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는 핸드헬드 게이밍 PC들은 예전보다 긍정적인 면모를 많이 갖추고 있다. 이미 최신 세대 콘솔이 x86 계열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최신 핸드헬드 게이밍 PC에 채택되는 시스템온칩(SoC)은 저전력에서도 콘솔 게임기에 사용되는 SoC보다 높은 성능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특히 AMD ‘라이젠 Z1 익스트림’의 등장은 핸드헬드 게이밍 PC 시장이 최신 게임들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레노버의 ‘리전 고(Legion Go)’는 AMD ‘라이젠 Z1 익스트림’ SoC를 채택한 핸드헬드 게이밍 디바이스다. 같은 SoC를 사용해 한 발 먼저 선보인 에이수스의 ‘ROG 엘라이(Ally)’와 비교하면 ‘리전 고’는 제품 구성 측면에서 여러 가지 차별화된 부분을 갖춘 점이 돋보인다. 특히 핸드헬드 디바이스로는 다소 크게 느껴질 ‘8.8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도, 분리형 컨트롤러로 휴대성과 활용성 측면에서 사용자에 더 넓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핸드헬드라 부르기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크기를 키운 레노버 '리전 고'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핸드헬드라 부르기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크기를 키운 레노버 '리전 고'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컨트롤러와 베이스 모듈이 분리 가능한 설계가 특징이다.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컨트롤러와 베이스 모듈이 분리 가능한 설계가 특징이다.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레노버 ‘리전 고’의 첫 인상은 제법 크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컨트롤러가 부착된 상태에서는 가로 299mm, 세로 131mm에 두께 41mm, 무게는 854g으로 제법 크고 무겁다. 경쟁 제품 대비 200g 이상 무거운 이유는 역시 큰 화면과 컨트롤러 분리형의 독특한 설계 때문일 것이다. 컨트롤러를 제외한 모든 것이 집약된 ‘베이스 모듈’은 가로세로 210x131mm, 두께 20mm, 무게 640g이다. 경쟁 제품이나 평범한 태블릿을 생각하면 조금은 두껍고 무거운 편이다.

베이스 모듈에는 전원과 볼륨 버튼, USB-C 포트 두 개와 마이크로SD 카드 리더, 3.5mm 오디오 잭 포트가 마련됐다. 이 모든 버튼과 포트들은 대부분 제품 상단에 배치돼 사용이 편리하다. 단, USB 포트 두 개 중 하나는 상단에, 하나는 하단에 배치돼 있어, 스탠딩 상태로 쓰기에는 고민이 필요하다. 한편, 베이스 모듈은 태블릿 형태로 단독 사용 가능하며, 뒷면에는 킥스탠드도 있어 별다른 받침대를 마련할 필요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편리하다.

리전 고의 또 다른 특징은 이동성이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크기를 키운 ‘디스플레이’다. 탑재된 디스플레이는 8.8인치의 WQXGA(2560x1600) IPS 타입 멀티 터치 디스플레이로, 144Hz 주사율과 500니트(nits) 밝기, DCI-P3 97%에 이르는 색재현률까지 갖췄다. 해상도나 주사율은 제품에 사용된 SoC의 실질 게이밍 성능에 비해서는 다소 과하지만, 게이밍 이외의 면에서는 장점이 될 부분이다. 또한 게이밍에서 HD(1280x720)의 정수 스케일링 배수를 사용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리전 고에 탑재된 AMD 라이젠 Z1 익스트림의 주요 특징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리전 고에 탑재된 AMD 라이젠 Z1 익스트림의 주요 특징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레노버 ‘리전 고’에 탑재된 AMD의 ‘라이젠 Z1 익스트림’ SoC는 당대의 최신 게임도 제법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성능을 갖춘 점이 특징이다. 라이젠 Z1 익스트림은 8코어의 ‘젠 4’ CPU, RDNA3 아키텍처 기반 12CU 구성의 GPU를 갖춰, 작고 가벼운 핸드헬드 PC에서도 제법 훌륭한 게이밍 성능을 제공한다. 또한 라이젠 Z1 시리즈의 RDNA3 기반 GPU는 미디어 지원에서도 AV1 코덱 하드웨어 지원 등 아쉬움 없는 구성을 갖췄다.

메모리는 16기가바이트(GB)를 갖췄는데, 타 제품들 대비 높은 성능의 LPDDR5X-7500 구성을 사용하며, 보드에 작접 탑재로 확장은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는 CPU와 GPU가 메모리를 공유하지만 3GB 정도가 GPU 영역에 우선 할당됐다. 스토리지는 모델에 따라 256GB~1TB 용량의 PCIe 4.0 SSD가 사용되며, 표준 M.2 2242 폼팩터를 사용해 확장도 가능은 하다. 제품 상단의 마이크로 SD 슬롯을 통해 최대 2테라바이트(TB) 용량을 추가할 수 있다. 

쿨링은 레노버 특유의 ‘콜드프론트(Coldfront)’ 기술을 사용하며, 물리적으로는 1개 팬을 사용하는 구성이다. ROG 엘라이의 2팬 구성과 비교하면 팬 수가 적지만, 크기나 두께 쪽에서 여유로운 부분을 잘 살린 모습이다. 최대 설정 가능한 전력 소비 제한은 30W 수준으로, ROG 엘라이의 최대 45W 수준보다는 다소 낮다. 배터리는 49.2와트시(Whr) 용량을 탑재했고, 30분만에 70%를 충전하는 고속 충전과 장시간 전원 연결시 배터리 보호를 위한 바이패스 모드도 있다.

컨트롤러는 분리된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컨트롤러는 분리된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레노버 ‘리전 고’는 양 쪽 컨트롤러를 원터치 분리할 수 있도록 제작돼 필요에 따라 컨트롤러를 탈부착해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본적인 컴퓨트 플랫폼 구성 요소는 모두 베이스 모듈에 탑재돼 제품의 두께나 무게가 늘어났지만, 컨트롤러 분리에 따른 활용도에서 장점을 갖는다. 각 컨트롤러에는 별도의 배터리가 탑재됐고, 분리된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컨트롤러 충전은 베이스 모듈에 장착시 이뤄진다.

리전 고의 ‘트루스트라이크(TruStrike)’ 컨트롤러는 조금 더 큰 크기, 분리형 설계를 갖추면서 좀 더 편안하게 다양한 기능을 탑재할 수 있게 됐다. 컨트롤러에는 두 개의 조이스틱과 방향 버튼, 4개의 전면 버튼 이외에도 가장자리와 뒷면 등에 총 10개의 사용자 정의 가능한 숄더 버튼과 트리거, 그립 버튼 등이 마련됐다. 기본 컨트롤러로도 콘솔 게임기의 컨트롤러가 크게 아쉽지 않은 구성이다. ‘홀 이펙트 조이스틱’ 등 정확도와 내구성을 위한 특징들도 갖췄다.

이 컨트롤러들은 베이스 모듈에서 분리된 상태에서도 사용 가능한데, 이를 잘 활용한 것이 ‘FPS 모드’다. 오른쪽 컨트롤러 하단에는 광학 센서가 마련됐고, 컨트롤러를 분리해 패키지에 포함된 별도의 컨트롤러 스탠드에 장착하고 스위치를 ‘FPS 모드’로 옮기면 바로 마우스처럼 사용할 수 있다. 느낌은 버티컬 마우스와 비행 시뮬레이션용 조이스틱 사이의 어딘가쯤이다. 오른쪽 컨트롤러에는 작은 터치패드도 마련돼 있어, FPS 모드가 아니더라도 편리하게 쓸 수 있다.

한편, 하드웨어 패키지에서 ‘충전기’도 제법 인상적이다. 기본적으로 포함된 충전기는 이동성을 위해 작고 가볍게 만들어져서, USB-C 포트 기반 장치를 여러 대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따로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한편, ‘리전 고’는 표준 USB-PD 규격을 사용해 리전 고의 충전기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 등의 USB-PD 충전에도 사용할 수 있다. 다른 기기의 USB-PD 충전기도 리전 고의 충전에 사용할 수 있다. 

익숙한 최신 PC게임들을 언제나 손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리전 고' / 권용만 기자
익숙한 최신 PC게임들을 언제나 손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리전 고' /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리전 고는 운영체제로 ‘윈도11’을 사용한다. PC 게이밍 플랫폼의 실질적 표준인 ‘윈도’를 직접 사용하는 덕분에 기존의 게임이나 스토어 플랫폼과의 호환성 문제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현재 PC에서 즐기는 게임들은 대부분 옵션 조절 정도로 리전 고에서도 실행할 수 있다. 일반적인 PC 사용환경 대비 작은 화면에 고해상도라는 특이점이 있지만, 기본적인 사용에서는 윈도11의 UI 스케일링 기능과 터치스크린으로도 큰 무리는 없다.

‘게이밍’에 집중하기 위한 기본 인터페이스로는 ‘리전 스페이스(Legion Space)’를 활용한다. 윈도11의 기본 인터페이스보다는 좀 더 큼직하고, 다양한 스토어에서의 PC 게임과 클라우드 게임, 안드로이드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게임들을 단일 환경에서 관리할 수 있다. 리전 고의 주요 시스템 설정도 이 ‘리전 스페이스’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키보드나 마우스를 활용할 수 없는 외부에서 편리하게 게임을 실행하는 데 최적화된 환경이다. 

리전 고의 국내 공식 가격은 109만9000원이다. 경쟁 제품 대비로는 사양이나 제품 구성 등에서 제법 경쟁력 높은 모습을 갖췄다. 레노버의 여타 게이밍 제품군처럼 ‘엑스박스 게임패스 얼티밋(Xbox Game Pass Ultimate) 3개월권을 기본 제공한다. 국내에 판매된 제품에는 PC 제품 한정으로 제공되던 ‘프리미엄 케어’ 1년과 ‘우발적 손상 보장(ADP)’ 서비스 1년이 기본 포함됐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런 부분은 상시 휴대하는 일이 많은 핸드헬드 디바이스를 좀 더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싱가포르=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