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곳입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재단’이 독립적으로 발행하고 운영하는 코인입니다. 해당 재단과 우리는 어떠한 지분관계도 없습니다.”

네이버 관계사가 만든 가상자산인데 네이버와 관계가 없다고 한다. 분명 조현준 효성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가 만든 코인인데 효성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해외 비영리 재단’이 운영하기 때문에 자기들 일이 아니라는 거다. 

국내 상장사들이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가상자산 발행에 나선 건 나름의 사연이 있다. 지난 2017년 금융당국의 ICO(가상자산공개) 금지 이후 국내에서는 공개적으로 관련 법인을 설립할 수 없었다. ICO를 명문화한 법이 없음에도, 정부는 이를 사실상 유사수신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기업들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법규는 미비하지만, 언젠가 대세가 될지도 모를 새로운 기술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 언젠가 국내 시장 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일단 해외로 눈을 돌렸다.

주로 블록체인에 친화적인 싱가포르, 두바이, 일본에 진출하거나 조세회피처인 몰타, 셰이셀 등에 법인을 세우고 가상자산 사업을 전개한 것이다. 사실상 당국이 밖으로 나가라고 등을 떠민 격이 됐다.

처음엔 일시적인 해외 도피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규제가 정비되지 못한 탓에 이들은 수년째 국내에 떳떳하게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시행된 특금법도 거래소와 인프라 사업자 관련 법일 뿐, ICO에 대한 제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문제는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기업 또는 중견 상장사가 발행한 가상자산이니 국내 투자자들은 프로젝트가 잘 될 것이라 철썩같이 믿는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돌아오는 건 모(母)회사의 외면 뿐이다. 

해킹을 당해도, 사업계획을 변경해도, 심지어 임원진이 횡령을 해도 자신들과 관계는 없다고 한다. 분명 모회사의 인력과 투자금이 투입됐는데, 해외 독립 법인(재단)이라며, 핑계를 대고 선을 긋는다. 

그사이 프로젝트는 방만경영으로 방치된다. 투자금을 빼돌려도 알길이 없다. 국내 모회사와 재단은 용역계약 등으로 서로의 투자금과 가상자산 판매대금을 주고받지만, 장부를 조작한다 한들 알 방법이 없다. 해외 비영리 코인 재단은 회계 보고서를 낼 의무도 감사할 기관도 없다. 

세금 문제는 어떠한가. 국내 법인이 해외에 재단을 설립해 가상자산을 판매하면 사실 내국법인으로 과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상자산 발행사가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비영리재단의 경우,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들을 잡아내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탈세제보가 거의 유일하다. 

걔중엔 억울한 피해자도 더러 생긴다. 나름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해보려고 외국에 나간 경우다. 정부 감시를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된 이들은 시간이 지나 결국 합법과 범법의 경계를 오가게 된다. 문제가 생기면 고스란히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고아나 다름이 없다. 

오는 7월 19일 가상자산기본법이 시행된다. 거래소들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강화하고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코인 한푼 발행 못하는 이 나라에서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근본적인 방법은 ‘발행사 규제’라는 밑단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