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가상자산 사업이 결국 대규모 손실만 남긴 채 실패로 막을 내리는 모양새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의 2대주주인 SK스퀘어가 최대주주인 NXC(넥슨 지주사)와 함께 코빗 매각을 추진 중이다. 지난 몇 년간 협업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실적에 사업 지속 이유를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4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인 SK스퀘어가 코빗 지분 매각을 위해 인수 대상자를 찾고 있다. SK스퀘어는 코빗 지분 32.3%를 보유, 62.67%를 들고 있는 NXC에 이어 2대 주주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SK가 NXC와 함께 코빗 지분을 모두 매각하려 하고 있다”며 “이미 보유 지분이 모두 손상처리 될 지경인 탓에 빠른 매각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인수가는 두 회사의 지분을 합쳐 1000억원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스퀘어는 지난 2021년 11월 ICT분야 투자를 위해 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로 설립된 회사다. 설립 이후 첫 투자처로 낙점된 곳이 코빗이다. SK스퀘어는 2022년 6월 코빗 지분 약 33.3%인 922만주를 874억원에 취득했다. 또한 코빗 지분을 0.5주당 1만5000원에 매입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SK스퀘어의 코빗 인수가가 과도하게 높다고 봤다. 코빗은 당시 영업손실만 358억원을 기록했다. 인수 당시 코빗 주가가 1만원이 채 안됐으니 신주인수권에 표시된 가격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분 인수 이후 양사는 다양한 부문에서 시너지를 노렸다. 이는 최대주주였으나 별다른 협업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NXC와 차별된 부분이다. 주로 자회사의 ICT와 블록체인 부문을 코빗과 협업해 확장하려는 모습이었다. 여기에는 블록체인 사업에 관심이 많은 최태원 SK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최태원 회장은 블록체인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2016년부터 블록체인 관련 팀을 만들고 SK C&C를 통해 자체 블록체인 ‘체인Z’를 선보였다. 2019년에는 미국 블록체인 회사 ‘컨센시스’에 100억원 가량을 투자하는 등 다양한 회사와의 협업과 신사업 개발에 열의를 보였다. 그래서 SK의 코빗 인수는 그룹의 블록체인 산업 진출의 본격화를 위한 발판이라 업계에선 해석했다.
SK텔레콤은 NFT(대체불가능토큰) 사업에 진출하며 NFT거래소를 연 코빗과 다방면으로 협업을 꾀하기도 했다. SK스퀘어의 자회사중 하나인 SK플래닛 역시 지난 2023년 4월 자사 서비스인 시럽(Syrup)과 연동, 시럽을 통해 코빗의 가상자산 조회 및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시럽 고객이 충전한 OK캐쉬백 포인트를 코빗에서 가상자산 거래에 사용하도록 하기도 했다. SK스퀘어는 자체 코인 발행계획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계속되는 부진에 SK스퀘어 투자는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기준 SK스퀘어가 보유한 코빗 지분 32.3%의 장부가는 660억원으로, 취득 당시 가격보다 200억원 넘게 하향 조정됐다. 신주인수권 역시 아직 행사되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선 올해 자산재평가가 이뤄지면 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본다. SK가 코빗 매각을 서두르는 이유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점유율에서 코빗이 차지하는 비중은 1%채 되지 않는다. 국내에 원화 마켓이 추가적으로 등장하지 않더라도 SK스퀘어가 더 이상 코빗 지분을 보유할 메리트가 크지는 않은 상황이다.
SK스퀘어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