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널뛰던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드는가 싶더니 이번 가계부채가 문제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연결된 문제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됐다.
한은도 이러한 부분을 인식했는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유동성을 늘려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피벗이 시작되면 한은 역시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2일 통화정책방향결정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했다. 소수의견 없이 전원일치로 동결을 결정했다. 이는 역대 최장 기간 동결로 1년 7개월동안 기준금리는 같은 수준에 머무르게 됐다.
만장일치 동결…"금융시장 안정 우선" 기조 확인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이자 경감과 내수회복보다는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금융안정 리스크 확대에 더 무게를 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부동산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킬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면서 “한국은행이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해서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 부추기는 통화정책 하지 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금통위에서 주목할 점은 3계얼 시계의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4명이 3.5%보다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인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의견을 낸 점이다. 만장일치 동결이 이뤄졌지만 금리 인하 가이던스를 낸 금통위원이 과반을 넘겼기 때문이다.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4명이 ‘인하 가능성’ 의견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간 물가 안정을 내세워 긴축기조 유지를 강조해왔던 만큼 꽤나 전향적인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월만 하더라도 ‘금리 인상’ 포워드가이던스 의견이 5명이나 됐다.
이 총재는 “현재 내수 상황에 대해서는 분명히 내수가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금리를 동결한 것은 금융안정 측면의 웨이트(무게)를 더 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화정책의 목표가 가계부채를 억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안정의 가장 큰 리스크가 부동산에 기인한 가계부채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정부와의 정책 공조, 시의성 등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 시그널을 막지 않으면 조금 더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부동산 정책 등을 펼치는 정부의 거시정책에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리인하 시그널 봤다"…높아지는 피벗 기대감
13차례 연속 동결로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이 총재는 “3개월(포워드 가이던스)이라는 것은 10·11월이 다 포함돼 있다”면서 “여러 지표가 서로 다른 답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판단해서 10월에 결정할 것이고, 그것을 또 11월에 결정할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날 이례적으로 대통령실에서 한은의 통화정책에 실망감을 표한 것을 두고는 “현 상황에서 어느쪽이든 가치를 어떻게 두는지 다를 것”이라며 “앞으로 나오는 지표를 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10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는 모습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기준금리 결정이 금융안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시급한 조치였고, 물가 등 기존 통화정책 결정 요인 만을 볼 때 금리를 인하할 시기라는 언급도 있었다”며 “다음 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시사된 것으로 보고 10월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현 수준인 3.50%에서 3.25%로 인하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당장 인하를 주장하는 금통위원은 없었던 반면, 포워드 가이던스 상 3개월 이후 금리를 낮출 수 있는 금통위원은 4명으로 증가했다”며 “‘만장일치 동결’과 ‘3개월 이후 인하검토 4명’사이에서 금리인하 시점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졌음에도 시장은 10월 인하 가능성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기조가 바뀌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10월 인하 가능성이 유효하다고 판단된다”며 “한은이 10월 인하 이후 11월 연속 인하를 못하거나 10월에도 부동산 이슈로 동결정책을 펼친다면 내년 상반기 경기 충격은 상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