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이 제대로 정의된 상태에서 독점을 얘기해야지요.”
2021년 12월 금융당국에 1호 가상자산 사업자로 신고를 마친 업비트에 대해 '독점'이라는 지적이 일자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이석우 대표는 이렇게 받아쳤다. 당시 업비트는 시장 점유율 90%이상을 넘겼던 거래소였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금융당국 규제 하에 관리하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된지 3년이 지났다. 지난달에는 가상자산 시장을 아우르는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됐고, 금융당국에는 가상자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 부서까지 생겨나는 등, 이제 그럴싸한 울타리는 만들어 졌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암울하다. 올해 가상자산 거래소의 VASP(가상자산사업자) 첫 라이선스 갱신을 맞았지만, 벌써 13개사가 서비스를 종료했다. 2021년 당시 산업이 제도권 안에 포섭된다는 기대감에 금융당국에 신고를 마친 거래소는 총 27개사. 제도가 시장을 품은지 3년 만에 이렇다 할 사업도 못해보고 기대를 접은 것이다.
그들이 마냥 손놓고 있었던 게 아니다. 특금법 시행 이후 실명계좌를 받지 못한 거래소들은 원화거래 개시를 위해 국내 은행과 끊임없이 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제휴가 리스크 대비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은행들은 이들을 모두 내쳤다.
금융당국은 원화를 취급하지 않는 거래소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달 갱신신고를 앞두고 진행된 현장점검에서도 5개 대형 원화거래소들만 소집했다. 나머지 중소 거래소들은 논의에서조차 배제됐다.
이석우 대표의 말 대로 시장은 이제 어느 정도 정의가 됐지만, 달라진 것은 '업비트 vs 25개 거래소'에서 '업비트 대 5개 거래소' 구도가 됐다는 점 뿐이다. 26일 기준 라이선스 갱신신고 의지를 표한 거래소는 원화 거래소 5개사와 아직 사업을 접지 못한 중소거래소 5개사 정도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은행권과 통신사의 독과점을 비판하며 그 원인을 ‘불공정 경쟁’ 때문이라 지적했다. 그 많던 가상자산 사업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원인은 시장 형성 초기 빠른 선점효과와 이후 ‘실명계좌'라는 무기 덕분이었다. 애초에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불공평한 구도가 이미 만들어졌던 셈이다.
은행에 무언의 압박을 가해온 금융당국의 그림자 규제 하에 중소 거래소들은 ‘실명계좌’를 얻어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공정한 경쟁조차 해 볼 기회를 박탈당한 중소 거래소에 대해, 금융당국은 생존여부도 관심이 없다.
사실상 시장을 방치해 고사하도록 만들고, 소수 업체만 살아남는 독점시장을 만들어 준 건 금융당국이다. 이것이 금융당국이 수 년간 구상했다는 시장의 건전한 성장과 이용자 보호가 맞는지 되묻고 싶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