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한 '딥페이크'(합성해 만든 가짜 영상·사진·음성) 성범죄가 급증하자 국회가 뒤늦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간 정쟁이 치우쳐 정책 논의를 등한시한 상황에서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부모 단체,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 성범죄 엄중 처벌 및 근본적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학부모 단체,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 성범죄 엄중 처벌 및 근본적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뉴스1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발의된 딥페이크 관련 법안은 33개에 달한다. 특히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딥페이크 영상물 구입·소지·시청·저장·판매 행위를 처벌하자는 법안에는 민주당 의원 29명이 참여했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딥페이크 피해자를 위해 영상물 삭제를 지원하는 법안에는 국민의힘 의원 17명이 참여했다.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상임위원회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5일 '딥페이크 성범죄영상물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여야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딥페이크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입법을 통해 대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여야는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방송법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정책 논의가 사라지면서 '과방위 무용론'이 일기도 했다. 이번 정책토론회는 이러한 비판을 다분히 의식한 행보다.

과방위 소속 한 여권 관계자는 "22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과방위 내에서 여야 공동 주최로 정책토론회가 열리게 됐다"며 "그간 딥페이크 범죄에 관련 현안질의가 거의 없었다는 지적도 나오지 않았나. '과방위가 정책 관련 일을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자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가 딥페이크 입법을 위해 부단히 매진하는 이유는 최근 관련 범죄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간 신고 접수된 딥페이크 성범죄는 118건에 달했다. 경찰은 이 중 피의자 33명을 특정하고 7명을 검거했다. 피의자 중 31명(검거 인원 중 6명)이 10대로 확인됐다. 특히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과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해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판매한 10대 3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아동 불법 성 착취물을 구매한 63명을 검거해 추가 수사를 진행 중이다.

딥페이크 범죄 온상으로 지목받은 텔레그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부터 긴급 삭제 요청을 받자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25개를 모두 삭제했다. 또 현재와 같은 상황이 전개된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가운데 현행 국회 입법이 부실해 딥페이크 범죄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현행 성폭력처벌법상 딥페이크 성범죄는 배포할 목적이 입증되지 않으면 제작했더라도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 영상물을 다운로드해 소지하거나 구입, 시청하는 행위도 처벌되지 못한다.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야권 관계자는 "딥페이크 범죄는 과방위 뿐만 아니라 행정안전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등이 걸려 있는 문제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며 "방심위의 딥페이크 범죄 관리·감독이 허술하지 않았는지 등을 앞으로 따져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