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국내 통화정책도 피봇(pivot‧정책전환)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실제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지는 건 어려울 전망이다.
가계대출 규제로 은행들이 금리 조정에 들어가면서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금융채 금리를 이미 역행하고 있어서다. 정기 예금금리는 이미 기준금리(3.5%)를 밑도는데 대출금리는 반대인 상황이다. 은행들은 벌어진 예대금리 덕분에 높은 이자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6개월 변동형(신규 코픽스)은 지난 주말 기준 4.50~6.16%, 주담대 5년 고정형(혼합·주기형)은 3.85~4.08%로 나타났다. 지난 6월 6개월 변동형 주담대 평균 금리가 3.83%~4.02%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단이 2%포인트 이상 올랐다.
지난 3개월간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가 내림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출 금리 역행기조가 뚜렷하다.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36%로 전달 대비 0.06%포인트 하락했고, 6월과 7월엔 전월보다 각각 0.04%포인트, 0.10%포인트 내린 바 있다.
이는 가계대출 폭증에 기인한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억제를 강하게 주문하면서 은행들이 여러 차례 금리 인상을 통해 대출 문턱을 높였다.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5년물)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에 하락했지만 이를 역행한 셈이다.
높은 금리 수준의 가계대출 증가로 은행들의 이자이익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대출 금리는 오르는데 예적금 등 수신금리는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내려서다. 대출을 늘릴 필요가 없는 은행들은 굳이 수신 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
이날 기준 19개 은행의 12개월 만기 정기 예금 금리는 모두 기준금리 수준을 밑돈다. 그나마 가장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곳은 NH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과 Sh수협은행의 헤이 정기예금 정도지만 이자율은 3.42% 수준에 그친다.
은행들은 벌어진 예대금리차 만큼 예대마진을 더 챙기게 된다. 실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의 올 3분기 순이익(지배주주 귀속 순이익 기준) 추정치는 4조7250억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조4222억원 보다 6.84% 증가한 규모다.
은행업계에서도 이자장사 논란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가계대출 폭증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일시적으로 조정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란 설명이다. 금리 인하기에는 통상 예대마진이 줄어드는 만큼 대출 관리 효과가 나타난 이후에는 정상 궤도에 돌아올 것이란 뜻이다. 대출 억제 정책에 따른 금리 정책인 만큼 이자장사 비판이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은행들은 상생 금융 등 사회공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금융당국 역시 최대 이익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은행권을 향해 상생금융 지원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민생이 어려울 때 은행이 충분한 상생 의지를 전달했는지 등 비판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국회도 나섰다. 국회는 지난달 말 본회의에서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으로 은행의 서민금융진흥원 출연 비율을 2배 높이는 내용이 골자다. 서민금융보완계정에 출연하는 금융회사 중 은행에 한정해 출연금 비율의 하한선을 기존 0.03%에서 0.06%로 높였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내년부터 최소 연간 1000억원 이상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지난해 은행권의 출연금은 1184억원이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