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 금융위원회와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을 시작으로 금융분야도 국정감사(이하 국감)를 시작한다. 올해는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반복된 금융사고로 주요 금융사 수장들이 오랜만에 국감장에 서게 될 거라는 관측이다.
특히 전임 회장 부당 대출 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100억원대 횡령 등 네 차례의 금융사고로 고개 숙인 이석용 NH농협은행장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정길호 OK저축은행 대표이사(대규모 임원 겸직)와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주가조작),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데이터 유출), 정신아 카카오 대표(카카오뱅크 주택담보대출 문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경영권 분쟁)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재근 KB국민은행 은행장 역시 인도네시아 해외투자 손실과 관련 정무위 증인 명단에 올랐지만, 야당이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의 출석을 요구함에 따라 일단 제외됐다. 양종희 회장은 국민은행 콜센터 감정노동자 문제에 관해 환경노동위원회 출석도 예고돼 있다. 다만 일찌감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출장을 예고해 참석 여부는 미지수다.
통상적으로 국감 증인은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사유서 제출 후 불참할 수는 있다. 지난 2022년에는 주요 금융지주 회장이 IMF·WB 연차총회 참석을 이유로 모두 불출석해 ‘맹탕 국감’이라는 질타를 받은 바 있다. 5대 은행장이 이들 대신 나와 방패막이가 돼야 했다.
지난해는 여야 간사 간 합의 불일치로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만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같은 사유로 또다시 나오지 않아 빈축을 샀다. IMF와 WB 총회가 은행권 수장들의 ‘국정감사 도피처’가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경우, 거취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어 국감을 피해 가기 어려울 거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일각에서는 임 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국감 전 용퇴할 거라는 이야기까지 돌았지만, 조병규 우리은행장과의 동반 참석해 정면 돌파를 택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설상가상 우리은행은 국감을 앞둔 지난 2일 또다시 55억원 규모의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올해만 우리금융그룹에서는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건을 포함해 3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으며 총 규모는 600억원에 육박한다.
금융권은 올해도 반복된 배임·횡령 등 금융사고뿐 아니라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가계대출 폭증 등으로 갖은 질타를 받았다. 내부통제 강화에 초점을 맞춘 원년이었지만, 허울뿐인 다짐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해가 됐다.
정치권도 이를 주시해 올해 국감에는 금융권 회장을 비롯해 은행장을 고루 증인 명단에 담았다. 금융권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이들 수장은 재차 고개를 숙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감 자리가 금융사 수장들을 망신 주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 매년 국감은 증인에게 발언 기회를 주기는커녕 일방적으로 의원들에게 ‘야단’만 맞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기업인들을 줄줄이 병풍으로 세우는 이른바 ‘무더기 증인 소환’으로 비난받는 이유다.
22대 국회 첫 국감은 이 같은 고질병 대신, 금융사고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명명백백 묻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김경아 기자 kimka@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