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던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새로운 진영 꾸리기에 나선다. 잇따른 금융사고에 전임 회장 부당대출 사건으로 사퇴 압박까지 받는 등, 위기가 있었지만 자회사 인사쇄신을 통해 입지를 다지겠다는 심산이다.
국회에서도 임 회장의 남은 임기에 대해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 연말 자회사 CEO 인사가 어수선한 조직 분위기를 다지고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지 주목된다.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우리금융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는 지난달 27일 1차 회의에 이어 이날 2차 회의를 개최했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우리은행, 우리금융캐피탈, 우리카드, 우리자산신탁, 우리금융에프앤아이, 우리신용정보, 우리펀드서비스 등 7개 자회사의 대표 후보자 선정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금융 자추위는 임 회장을 위원장으로, 사외이사 7명 등 이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임 회장, 사퇴 대신 혁신안… 자회사 CEO 더 중요해졌다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출석한 임종룡 회장은 ▲자회사 임원 선임 사전합의제 폐지 ▲윤리내부통제윈원회 신설 ▲친인척 신용정보 등록 ▲여신심사 관리 강화 등의 혁신 방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냈다.
여야의원들이 “우리가 원하는 답이 이것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다. 의원들의 질의를 모두 받아낸 정면돌파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국감 출석을 결심할 때 부터 정무위 의원들과 물밑 접촉을 통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무위원회 위원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는 행정고시 선후배로 이명박 정부 시절 인연도 있다. 임 회장(행시 24회)은 당시 대통령실 경제비서관을 지냈고 윤 위원장(행시 32회)은 대통령실 선임 행정관이었다. 몸을 한껏 낮춘 임 회장에게 의원들은 우리금융의 신뢰회복을 당부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임 회장은 국감에서 사퇴설도 일축하는 등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혁신안과 함께 “책임질 것이 많다”고 밝힌 것인데, 윤한홍 위원장은 이에 대해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아 있으니 의원들이 지적한 사항을 잘 반영해서 혁신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임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자회사 CEO 선임이 더욱 중요해졌다. 실적 개선은 물론, 조직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인사를 골라야 한다. 당장 내부통제 점검과 보험사 인수합병(M&A) 등, 구조개혁 관련 현안들이 쌓여있다. 오는 12월 자회사 CEO 인사가 임 회장 남은 임기의 공적을 가를 것이란 분석이다.
차기 은행장 두고 설왕설래… 고심 깊어질 듯
자회사 CEO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자리는 차기 우리은행장이다. 외부 인사가 포함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흐트러진 내부 분위기를 정리하고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서는 내부 출신의 행장 선임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어졌다는 전언이다.
자추위에서 롱리스트(후보군)를 정하면 본격적인 선임 절차가 시작된다. 임 회장이 취임 직후 도입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따르면 은행장 선임은 ▲1단계 분야별 외부 전문가와 심층 인터뷰 ▲2단계 임원 재임 기간 중 평판 조회 ▲3단계 회장 및 이사회 보고를 통한 업무역량 평가 ▲4단계 자회사대표추천위원회(자추위)의 최종 심층면접 및 경영계획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해 이뤄진다. 이전까지 이사회 내부 논의만으로 CEO 후보를 결정해 오던 관행을 탈피하기 위해서다.
업계에서는 현직인 조병규 행장의 연임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손 전회장의 부당 대출 사건뿐 아니라 우리은행에서 잇따라 발생한 횡령 등 금융사고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상황이 위중한 만큼 조 행장이 후보군에 들어가면 금융당국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조 행장은 문제가 된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의 부당대출과 관련, 손 전 회장 임기 중 준법감시인(2020.2년), 경영기획그룹 부행장(2020.12) 등을 거쳤다는 점에서 부당대출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실제 금융당국도 “이번 사태를 두고 경영진에 대한 평가는 이사회에 있다”고 하면서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조 행장이 롱리스트에 포함되면 자칫 책임 회피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후보군에 포함되더라도 사퇴 의사를 밝힐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사회의 판단이라고 하지만 금융당국 등 분위기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후보군 선정에 있어 투명하고 합리적인 과정일 강조해온 것과 최근 우리금융 사태 등을 합해 봤을 때 후보군 선정에서부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