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등 대외 요인까지 겹치면서 달러강세에도 힘이 실린다. 이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00원대가 ‘뉴노멀(새 기준)’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환율은 지난해 12월 27일 장중 1480원을 돌파한데 이어 마지막 거래일인 30일 1472.3원을 기록하며 마감했다.  

국내 정치적인 요인이 사라지더라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금리 인하 지연 등이 강달러를 고착화 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DALL·E
국내 정치적인 요인이 사라지더라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금리 인하 지연 등이 강달러를 고착화 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DALL·E

 

"환율 1500원까지 간다" 전망 

전문가들은 연내 원화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 1500원까지도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과거 환율이 이처럼 고공행진을 펼친 것은 1990년 환율변동제를 도입한 이래 1997~1998년 IMF 사태(외환위기)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레고랜드 사태-미국발 고금리 충격이 겹쳤던 시기 등 세 번밖에 없었던 만큼 고환율은 위기의 ‘시발점’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일단 씨티그룹, 스탠다드차타드 등 해외 투자은행(IB) 환율 전망치는 1분기 1435원, 2분기 1440원, 3분기 1445원 등 모두 1400원을 넘는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중 일본 노무라는  3분기 환율이 1500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고환율은 국내외 불확실성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사태 영향으로 1400원을 넘겼던 환율은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또 한 번 급격한 해외발 충격 이슈를 접했다. 그러다 정점을 찍은 것은 12월에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환율은 단숨에 1410.1원까지 치솟은 뒤 탄핵정국에 들어서서는 1430~40원대를 등락했다.

여기에 미국이 금리를 인하한 뒤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것이라 발표하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결국 한덕수 국무총리(권한대행)의 탄핵을 거치면서 환율은 1480원마저 넘어섰다.  

이같은 상황이 반가울리 없다. 지난해 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부·한국은행의 외환정책이 실패할 경우, 외환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환율이 1500원대를 넘보며 상승세를 지속하고 환율방어를 위한 외환보유액 매도가 외환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외환 위기 우려는 과도… ‘위기설’ 누르기 나선 당국

외환당국도 즉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강달러’ 기조에 대응 중이다. 국민연금공단과 외환 스와프 연장 및 규모 확대, 시중은행의 외환 유입 한도 확대 등 수급 개선 방안을 발표하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해 적극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상황에서 외환위기까지 거론할 단계는 아니라는 평가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대외지급능력은 대체로 양호한 모습을 이어갔으며 한은금융망 등 금융시장인프라의 결제리스크도 안정적으로 관리됐다고 평가했다.

3분기 우리나라의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은 1분기(3846억 달러) 대비 소폭 감소한 3780억 달러 수준이다. 외환보유액은 11월 말 기준 4153억 9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한은금융망 참가기관의 결제유동성 확보 수준을 나타내는 ‘일중당좌대출한도 최대소진율’과 ‘자금이체지시 대기비율’은 3분기 각각 21.4%, 4.8%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한은은 “환율 상승이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대체로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단기적 자금수요와 환율 급등이 맞물릴 경우 일부 금융기관들이 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융지주 비상 경영체제… 수익성 방어 전략 고심

금융지주들은 고환율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 경영 전략 수립에 나섰다. / 조선 DB
금융지주들은 고환율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 경영 전략 수립에 나섰다. / 조선 DB

주요 금융그룹은 환율 리스크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비상 경영계획 수립을 위한 내부 논의에 착수했다. 당초 1300원대 환율을 기반으로 세웠던 경영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 위해서다. 고환율이 고착화하면 자본비율과 실적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해 말 원화 환율이 130원가량 급등하면서 은행권은 약 1000~1200억원가량의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외환거래 손익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0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7%(1139억원) 감소했다.

은행의 경우 위험가중자산(RWA)의 증가로 총자본비율이 하락할 우려가 크다. 환율이 급상승하면 원화가치 하락으로 외화RWA의 원화환산액이 늘어 총자본비율이나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원화RWA를 기반으로 계산하는 은행 건전성 지표를 악화시킨다. 원화값이 10원 하락할 때 5대 금융지주 RWA는 약 1조9800억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한다. 

5대 시중은행 가운데 신한은행을 제외한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등이 은행장을 교체한 것도 불확실한 영업환경에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5대 금융지주는 일제히 ‘영업통’으로 꼽히는 은행장을 선임하면서 고환율 시대 등 변동성이 높아진 금융환경에 맞춘 체질 개선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