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투쟁은 돈을 더 달라는 억지가 아닙니다. 일한 만큼 보상하라는 당연한 외침입니다.”

27일 오후 IBK기업은행 노조가 광화문 앞 도로에서 가두행진을 펼치고 있다. / 김경아 기자
27일 오후 IBK기업은행 노조가 광화문 앞 도로에서 가두행진을 펼치고 있다. / 김경아 기자

27일 오전 10시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IBK기업은행 전국 영업점을 비롯해 본점 직원 다수가 집회에 참가했다. 기업은행이 임금 차별·수당 체불 등을 이유로 사상 첫 단독 총파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사 갈등은 은행권이 이자장사를 통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비판받는 현 상황에서 다소 이질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인당 평균 임금은 1억원을 돌파했으며, 성과급은 기본급의 200%대에 달했다.

그러나 기업은행 노조는 기업은행이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시중은행에 비해 30% 적은 임금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부가 총인건비 제한을 핑계로 시간 외 근무수당을 일절 지급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1조10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가져간 데 반해 직원들은 특별성과급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업은행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약 2조7000억원이었으며, 올해는 최대 3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조는 지난 10월부터 사측과의 열 차례가 넘는 임금·단체협약 교섭 및 중앙 근로위원회 조정 절차를 진행했지만 끝내 결렬됐다. 이에 지난 12일 열린 쟁의 행위 찬반 투표에 조합원 88%가 참여하고 그중 95%가 찬성, 이날 총파업이 진행됐다.

IBK기업은행 을지로 본관 앞 도로에서 총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경아 기자
IBK기업은행 을지로 본관 앞 도로에서 총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경아 기자

파업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11시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사전집회를 가졌다. 이날 구호는 “은행장은 남탓말고 차별임금 보장하라”, “기업은행 체불임금 금융위는 각성하라” 등 금융위원회와 기재부, 김성태 IBK기업은행장을 향한 비판으로 구성됐다.

김형선 금융산업노조 위원장 겸 기업은행지부장은 “코로나 때도 소상공인 대출의 80% 가까운 돈을 기업은행 노동자들이 지원했다”며 “경제 당국의 일선에서 마스크 한 장에 기대 현장을 지켰지만, 우리에게 보상되는 돈은 단 1원도 없었다”고 호소했다.

이날 집회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주영·박해철·박홍배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한창민 의원(사회민주당) 등 국회의원들도 참석해 연대사를 맡았다. 기재부를 비롯해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이어졌다.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인 박홍배 의원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기업은행 동지들이 정책금융 73%(7조8000억원)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공급했다”며 “그 덕분에 이들이 살았고 대한민국이 엄혹한 시절을 견뎠지만, 그 대가는 임금 체불과 시중은행과의 임금 격차”라고 말했다.

본점 앞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기업은행 을지로 본관에서부터 금융위원회가 위치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까지 약 1시간의 가두행진을 펼쳤다.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인 박홍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7일 오후 IBK기업은행 총파업 집회에서 연대사를 말하고 있다. / 김경아 기자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인 박홍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7일 오후 IBK기업은행 총파업 집회에서 연대사를 말하고 있다. / 김경아 기자

다만 이번 총파업으로 각 기업은행 점포 영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불가피했다. 창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모두 파업에 참여해, 해당 업무는 팀장급 이상 직원 및 비조합원들이 담당했다.

경남 창원 A 영업점에서 올라온 한 직원은 “새벽 5시 반에 다함께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며 “비조합원을 제외하면 모두가 참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 모인 참가자들은 영업점별로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기업은행 본점 직원들도 이번 총파업에 적극 참여했다. 본점 연금사업그룹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임신 중인 경우 등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다 나왔다”며 “(자리에) 남은 책임자들도 열심히 하고 오라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총파업을 대비해 사내 인트라넷에 ‘비조합원의 (파업 당일) 연차 사용 자제’를 요청했으며, 콜센터 전화를 통해서도 ‘금일 기업은행 총파업으로 직원 연결이 지연되거나 일부 상담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라는 공지를 띄웠다.

한편, 노조는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재차 총파업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IBK기업은행 을지로 본관 주차장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 관련 물품을 배부 받고 있다. / 김경아 기자
IBK기업은행 을지로 본관 주차장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집회 관련 물품을 배부 받고 있다. / 김경아 기자

김경아 기자
kimka@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