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공지능(AI)과 함께 큰 주목을 받는 IT분야 키워드로 ‘양자 컴퓨팅’이 꼽힌다. 기존의 슈퍼컴퓨터로는 수년이 걸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다는 양자 컴퓨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컴퓨팅의 미래’로 자리 잡은 듯하다. 국내에서도 정부의 핵심 사업 주제 중 하나로 거론되고 누군가는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를 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양자컴퓨터’ 시대를 논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CES 2025 현장에서 “아직 제대로 된 양자 컴퓨터가 나오려면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하자마자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실시간으로 폭락해 버린 것이다. 당시 젠슨 황 CEO의 뉘앙스는 “10년은 너무 짧은 거 같고 30년은 너무 길고 그러면 대략 20년쯤 아닐까”라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엔비디아 또한 양자 컴퓨팅을 주제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양자 시뮬레이터는 물론이고, 3월에 열릴 GTC 2025서도 양자 컴퓨팅 관련 행사를 마련했을 정도다.
사실, 이렇게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될 때까지의 여정이 길게는 수십 년까지 걸린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모양새다. 젠슨 황 CEO의 발언 이후 나온 아이온큐 공동창업자인 김정상 교수의 발언도 그렇고, 지난주 한국을 찾은 시모네 세베리니 AWS 양자기술 디렉터 또한 아직 양자 컴퓨터로의 여정은 이제 초기 단계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더욱 가치 있는 활용을 위해서는 큐비트 수도 크게 늘어야 하고 현재 주류인 초전도체 방식의 한계인 동작 조건 또한 다른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양자 컴퓨팅을 다루는 업계에서는 이러한 ‘상용화’의 방향성이 외부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상용화가 누구나 ‘구입’ 가능한 수준으로의 기술 발전이라면 업계가 생각하는 상용화는 클라우드 등과의 결합을 통해 필요에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AWS나 IBM, 구글 클라우드 등은 양자 컴퓨팅을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즉, 양자 컴퓨팅을 어느 특정 유형의 연산을 빠르게 하기 위한 ‘가속기’ 같은 의미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혹시나 양자 컴퓨터가 PC 수준까지 작게 만들어지면 기존의 반도체 기반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을까? 사실 이것 또한 절묘한 시대적 상황에 따른 오해가 아닐까 생각된다. 양자 컴퓨터가 처음 이야기되던 시절 반도체의 미세화는 슬슬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견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이에, 약간의 비약이 들어가 ‘반도체 다음은 양자’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 반도체 제조 공정은 핀펫(FinFET)을 지나 GAA(Gate-all-around)의 상용화를 앞두면서 미세공정의 명칭을 단지 ‘숫자’로 만들어 버렸고 여전히 미세화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제 무어의 법칙은 깨졌다”라고 하고 실제 체감되는 발전 속도도 예전같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이런 상황은 이제 CPU 뿐만이 아니라 GPU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예전처럼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쉽게 투입할 수 없다면 연산의 방법을 바꿔야 할 때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가 등장했다고 기존 방식의 컴퓨터가 대체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당분간은 양자 컴퓨터와 양자 시뮬레이터간의 경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보면 “제대로 된 양자 컴퓨터가 나오기까지는 20년은 걸린다”는 말이 그리 부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권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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