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全) 금융권의 가계대출이 10개월 만에 뒷걸음질 쳤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연말 상여금 효과,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등이 합쳐진 결과다. 금융당국은 연간 가계대출 증가 규모를 관리한다는 방침이지만 금리 인하 등 대출 수요 자극 요인이 남아 있는 만큼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다.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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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1월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전월대비 9000억원 줄었다. 지난 2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금융당국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된 데다 계절적 요인으로 주택거래가 둔화한 점 등을 배경으로 꼽았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해 10월 3만8000가구에서 12월에는 2만7000가구에 그쳤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매매도 1만5000가구에서 1만 가구로 줄었고 아파트 분양은 지난해 11월 3만2000가구에서 올해 1월에는 1만 가구로 급감했다. 전국 전세거래량 역시 5만2000가구에서 4만1000가구로 줄었다.

부동산 거래가 줄면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전월(3조4000억원)보다 소폭 줄어든 3조3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초 당국의 대출 압박이 다소 완화되면서 은행들이 연초 대출 영업을 재개했지만 증가폭은 축소됐다.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잔액이 한 달 사이 4조2000억원이나 줄었다. 

업권별로 은행권을 보면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은행 가계대출은 5000억원 감소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 3조3000억원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효과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상호금융·보험·저축은행·여신 등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5000억원 감소했다. 상호금융과 보험 등에서 각각 2000억원, 5000억원 감소했지만 저축은행업권에서 2000억원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증가폭은 전월(1000억원) 보다 소폭 확대됐다. 2금융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에 나섰지만 저축은행 업계가 영업 정상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증가세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박민철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금융권 전체 주담대는 3조원대로 전체 평균에 비해 상당히 낮아 전반적으로 낮은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주택 관련 대출은 전반적으로 낮은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비은행으로 이동했던 대출 수요가 은행들의 영업 재개로 다시 은행권으로 돌아가는 측면도 있었다”면서 “은행권 주담대는 늘었지만, 비은행도 비슷한 규모로 주택 대출이 늘고 기타대출은 성과급과 명철 상여금이 겹치며 상당폭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가계대출 전망을 두고는 안심하기 이르다는 평가다. 기준금리 인하 등에 따른 대출 금리 인하가 예상되고 정치적 이슈 해소 이후 주택시장 활성화 등 가계대출을 자극할 만한 요인이 남아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권 주담대 증가폭이 확대됐고 정책대출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며 “이달 은행권 영업이 활성화하고 새 학기 이사 수요 등이 더해지면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 관리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업무 계획 발표에서 가계대출은 정교한 관리 체계와 상환능력 중심의 심사관행 확립을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을 낮춰가는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98.7%, 2022년 97.3%, 2023년 93.6%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3분기 기준 90.8%까지 떨어졌다. 해당 비율을 80% 수준까지 낮춰가는 것이 당국의 목표다.

금융당국은 각 은행의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계획 이행을 분기별로 점검하고 계절성 등을 고려한 연간 목표의 합리적 배분과 한도소진율에 따른 단계별 조치계획을 꼼꼼하게 살필 예정이다. 오는 7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 역시 차질 없이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