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회사가 그간 추진해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가 규제 틀안에서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기술 도입에만 속도를 내는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박영호 보스턴컨설팅(BCG) 파트너는 27일 이날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미래 변화와 금융의 성정전략’ 세미나 세 번째 세션인 ‘기술 혁신과 금융’ 토론자로 참석해 “지난 5년 간 한국의 금융기관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을 추진했지만 변죽만 울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호 파트너는 “기술을 도입하는 속도보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고 체계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한국의 금융사들은 이 부분이 많이 미진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글로벌 금융사들은 AI,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실시간 리스크 관리, 클라우드, 네이티브 기술 기반 코어뱅킹 등 디지털 금융을 실현하기 위해 ‘코어’를 건드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박 파트너는 “한국 금융사들은 규제 틀 안에서 제한적인 혁신을 시도하는데 머물러 있다”며 “코어를 변화시키면 기업은 물론 고객에게 많은 변화를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금융회사의 변화를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규제 패러다임 역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영호 파트너는 “디지털 금융 규제 패러다임은 ‘관리’에서 ‘육성‧혁신’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AI 기반 신용평가, 생성형 AI, STO, 디지털 인증 등 신기술이 한국 금융시장에 발빠르게 들어왔지만 규제에 막혀 있어 한국 금융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 회피형 규제에서 리스크 관리형, 혁신의 규제로 전환돼야 한다”며 “최소한 패스트 팔로우로서 글로벌 흐름에 맞춰 규제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금융 소비자들 역시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라 금융 혁신을 주도하는 요구자로서 금융회사와 당국 등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같은 토론에 참석한 김성웅 금융보안원 AI혁신실장은 “AI 기술 활용이 확대되면서 정보 유출, AI 편향성과 관련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보안 기술을 제고하고 안전한 활용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금융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망분리와 관련해 시스템의 안전성 등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금융확산으로 보이스피싱과 같은 디지털 사기 범죄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금융권이 공동으로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철흠 신용정보원 AI데이터센터장은 “AI 모델은 학습된 데이터의 양과 품질이 성능과 신뢰성을 좌우한다”며 “금융권은 데이터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마이데이터를 통한 비금융 데이터 융합 ▲합성 데이터 활성화 ▲금융기관 간 협업 활성화 및 공동 과제 수행을 제안했다.
이용재 유니스트 산업공학과 교수는 “AI 인재를 위한 인센티브, 개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등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AI 인재가 금융권으로 갈 이유가 없다”면서 “플랫폼, 기술, 규제완화까지 다 있더라도 연구자들이 없다면 실제로 실행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 부분에서도 테이터를 확장하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검토하고 그에 맞는 활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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