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타증권이 지난해 소송에서 패소해 1900억원의 배상금을 물어준데 이어, 대만 모(母)기업에는 230억원의 배당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5년간 지급한 배당금만 900억원이 넘었다.
이익이 났으면 주주에게 배당을 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소송 뿐만 아니라 회사 경쟁력 약화 징후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커녕, 제 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높다.
7일 유안타증권 최근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 측은 지난해 말 중국 안방보험에 소송비용 등 1911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안방보험이 2017년 동양생명 주식매매계약과 관련해 유안타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대법원에서 받아들여 최종 패소했기 때문이다.
유안타증권 등 공동매도인은 2015년 동양생명 지분을 안방보험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육류담보대출의 부실 위험성 등을 알리지 않았다. 안방보험은 이를 문제 삼아 국제상공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에 주식양수도계약 위반 및 손해배상 청구를 신청했다.
2020년 ICC는 유안타증권 등 매도인에게 1666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안방보험은 강제 집행을 위해 한국 법원에 ‘중재판정 승인 및 집행결정’을 신청했고 결국 대법원도 안방보험의 손을 들어줬다.
유안타증권은 2021년부터 충당부채를 쌓으며 재원을 마련했다. 2020년 말 83억원이었던 소송충당부채는 2021년 말 1408억원으로 늘었고, 2022년 말 1482억원, 2023년 말 1783억원, 2024년 9월 말 1860억원씩 매년 불어났다. 충당부채는 재무제표상 영업외비용을 잡혀 순이익을 줄인다.
문제는 경영진 실수 및 내부통제 실패로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상황임에도 불구, 최대주주인 대만 유안타그룹(Yuanta Securities Asia Financial Services Private Limited)에 매년 수백억원의 배당금을 꼬박꼬박 지급했다는 점이다. 2021년부터 5년간 유안타그룹에 지급한 배당금은 921억원이다. 이 기간 연결 순이익(4382억원)의 20%가 넘는 규모다.
이는 정상적인 주주환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작년 말 기준 대주주의 유안타그룹 지분율은 58.57%. 결국 전체 배당금 중 약 60% 가량이 최대주주로 들어갔는데, 2022년부터는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금총액)을 50%대로 올려 유안타그룹에 더 많은 배당금을 지급하게 됐다.
같은 기간 임원 연봉도 훌쩍 뛰었다. 지난해 유안타증권 등기임원 6명의 평균 급여는 4억3600만원으로 전년(2억8500만원)보다 1억5100만원 늘어났다. 급여만 놓고 보면 중형 증권사(자기자본 1조~3조원) 7곳 중 최대다. 궈밍쩡 기타비상무이사는 19억6300만원(퇴직소득 포함)을 받았다. 미등기임원 33명 평균 급여도 2억9800만원에서 3억8300만원으로 1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4년 새 업계 순위 11위→14위 추락
문제는 그사이 회사 경쟁력이 눈에 띄게 쇠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송충당부채 적립 직전인 2020년 말 자기자본 1조3565억원으로 업계 11위였던 유안타증권은 작년 말 현재 14위로 3단계 내려갔다. 모기업 그룹으로부터 유상증자 등 자금 지원을 받은 교보증권과 한화투자증권, 신영증권 등에 밀렸다. 유안타증권은 2014년 5월 그룹 편입 이후 유안타그룹으로부터 이렇다 할 자금 지원을 받지 못했다.
작년 말 유안타증권의 자기자본은 1조6060억원으로 2020년 말보다 18.3% 늘어나긴 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증권사 전체 자기자본이 61조8435억원에서 91조7407억원으로 35.2% 증가한 것에 비춰보면 초라할 따름이다. 유안타의 자기자본이익률은 5.7%로 업계 평균 6.0%를 밑돈다.
그러다보니 주가도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4일 기준 유안타증권 주가는 2605원으로 1년 전 같은 날(2655원) 대비 1.9% 하락했다. 액면가 5000원을 훨씬 밑도는 주가다. 이 기간 KRX 증권 지수 등락률이 7.4%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부진하다고 볼 수 있다.
10년 전인 2015년 같은 날(7120원)과 비교해서는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유안타증권 주가는 2022년 1월 이후 2000~3000원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회사의 소송 리스크 등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할 경영진과 대주주가 오히려 제 배만 불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차등배당 등 경영진이 책임진다는 제스처를 충분히 취할 수 있음에도 회피한 건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대 부회장은 “소송 리스크로 충당부채를 쌓은 상황에서 대주주에 배당금을 지급하면 주가에 반영돼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경영상 책임을 지고 대주주에 차등배당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유안타증권 측은 소송과 배당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대주주 배당 지급에 문제가 없단 입장이다.
유안타증권 관계자는 “상장회사라서 배당을 안 할 수 없고 충당금 쌓을 거 다 쌓고 배당하는 것"이라며 “차등배당은 대주주에서 판단할 문제다. 정관상 주주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공평한 배당을 실시 중이다. 주가는 밸류업 공시 이행을 통해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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