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의약품이 제외된 가운데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별화된 의약품 관세 정책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요구하는 관세를 부과할 경우 의약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업계는 새로운 관세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차트를 들고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조선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차트를 들고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조선DB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 마이애미 리브(LIV) 골프 대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만나 “제약(관세)은 별개의 범주로, 가까운 미래에 발표할 것”이라며 “의약품에 대한 관세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 발표에서 의약품을 제외하며 ‘공중 보건 악영향’을 언급한 바 있지만, 이번 발언으로 언제든 의약품에 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만약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이 원료 수입 다변화와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위해 의약품에 관세를 책정할 경우 국내 기업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대미(對美) 한국 의약품 수출액은 15억1345만달러(약 2조1600억원)로 전체 의약품 수출의 16%를 기록 중이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발행한 보고서를 보면 2024년 기준 미국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의약품 규모는 39억8000만달러(약 5조7272억원)로 전년 26억2000만달러(약 3조7702억원) 대비 52% 증가했다.

현재 미국으로 완제의약품을 수출하는 국내 대표 기업으로는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대웅제약, 유한양행, GC녹십자, 휴젤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미국 의약품 관세 상황을 지켜보며 정책 변화에 대응할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셀트리온은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제품을 장기간 추가 수입 없이 현지에서 조달이 가능할 정도의 재고를 확보한 상태다. 일부 조기 소진이 예상되는 제품은 미국 현지 제조소를 통해 반입된 원료의약품(DS)을 기반으로 완제의약품(DP) 생산이 가능하다.

셀트리온은 관세 압박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 내 생산기지를 확보도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현지에서 완제의약품뿐 아니라 원료의약품까지 생산할 수 있는 현지 생산기지를 인수하거나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가 부과되는 완제의약품보다 관세 부담이 낮은 원료의약품 수출에 집중하고, 현지 제조소에서 완제의약품을 생산하는 방식의 전략도 구상 중이다.

미국이 주요 무대인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명 엑스코프리)’ 생산기술 이전과 현지 재고물량 확보 등 미리 관세 대응 전략에 착수했다. 세노바메이트는 국내에서 원료의약품(API)을 제조한 후 캐나다에서 정제(태블릿)와 제품 패키징 등 완제의약품으로 만들어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회사는 수년 전부터 추가적인 공급망 확보를 통해 캐나다 외 미국 현지 생산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미국 내 의약품 위탁생산(CMO) 시설을 통해 제품 공급을 추진할 계획이다.

반면 나머지 국내 기업들은 미국 관세 정책에 영향이 미비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명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트럼프 2.0과 24년 변화구’을 통해 “의약품 관세 부과 시 국내에 대한 영향은 한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수출하는 대웅제약과 휴젤의 경우 수출계약상 관세 책임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에 판매되는 보툴리눔 톡신은 대체로 미국 파트너사를 통해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데, 관세가 부과될 경우 현지 판매사가 부담하도록 계약돼 있다.

혈액제제 신약 ‘알리글로’를 미국에 수출 중인 GC녹십자는 공급이 부족한 필수의약품(혈액제제)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관세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유한양행 역시 미국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얀센이 비소세포폐암 신약 ‘렉라자’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로열티만 수령하므로 관세 영향이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럼에도 한국바이오협회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관세로 인해 미국 진출에 어려움이 있거나 미국의 정책 변화가 감지될 경우 이를 신속히 파악해 정부에 건의하기 위한 대응 창구를 운영할 계획이다.

정부 역시 지난 2월부터 관세 애로 접수 통합창구인 ‘관세대응 119’를 운영 중이다. 관세대응 119는 관세 확인, 맞춤 상담, 수출지원사업까지 연계하는 단계별 통합 지원체계를 구축해 수출 애로 해소를 지원하고 있다.

업계는 미국이 6개월 뒤 5%, 1년 뒤 10% 등 단계적 관세를 의약품에 적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이와 같은 단계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기업에 생산·공급 조정 시간을 주기 위함으로, 낮은 세율의 관세를 시작으로 점진적인 인상을 추진하는 전략이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향후 관세 부과시에도 원료의약품(DS, API)에 부과되는 경우, 약가의 10% 미만(신약기준)에 불과하며 수익구조 내에서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므로 국내기업에의 영향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