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대 투자자 A씨는 2019년 6월 한국투자증권 PB로부터 ‘좋은 상품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지점을 찾았다. ‘벨기에 정부 기관이 임차하는 상품이라 안전하다’는 말에 1억원을 넣고 가입했다. 선순위·후순위 등 위험성 고지는 없었다. 6개월마다 준다고 했던 배당금은 네 번 받고 그다음부터 나오지 않았다. 6년이 지난 현재 펀드는 전액 손실됐고 A씨는 원금을 잃게 됐다.
한국투자증권이 연초부터 소비자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분기 접수된 민원은 500건 이상으로 1년 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업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계열사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해외 대체투자 펀드 영업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의혹이 제기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공격적인 영업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내부통제 문제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투자증권 소비자 민원은 519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1분기 218건 대비 138.1% 늘어난 수치다. 전날까지 금투협에 공시한 증권사 25곳 중 가장 많다. 펀드 등 상품판매 관련 민원이 516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다. 작년에도 자체 또는 금융감독원 등 기관에 접수된 한국투자증권 소비자 민원은 715건으로 압도적 1위였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 증권사 10곳의 평균 169건을 훌쩍 넘었다.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 건수 역시 454건으로 업계 전체인 1901건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2위인 미래에셋증권 253건보다 200건 이상 많았다. 빗발치는 소비자 민원과 분쟁조정 신청으로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의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종합등급은 ‘미흡’으로 평가됐다.
한국투자증권 민원이 대폭 늘어난 것은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 펀드(벨기에펀드)에서 전액 손실이 발생하면서다.
벨기에 펀드는 한국투자증권 계열사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설계·운용한 펀드로 2019년 6월 한국투자증권 등에서 판매됐다. 벨기에 정부 기관이 임차 중인 브뤼셀 투아송도르 빌딩의 장기임차권에 투자한 상품이었고 금융기관 등 대주단으로부터 추가 대출을 받아 빌딩에 투자했다.
출시 이듬해 코로나 펜데믹 여파로 해외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자산 가치가 하락하며 만기 내 매각에 실패했다. 작년 12월엔 선순위 대주단으로부터 만기 채무불이행에 따른 자산 강제 처분 결과를 통보받으면서 자산을 강제 매각하게 됐고 투자금 전액 손실에 직면했다.
벨기에 펀드 피해자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투자자 2519명이 벨기에 펀드에 투자한 금액은 약 900억원이고 이 가운데 약 600억원(투자자 1930명)이 한국투자증권에서 판매됐다.
문제는 펀드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의혹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70대 A씨는 2019년 6월 자주 거래하던 한국투자증권 PB(프라이빗뱅커)로부터 “좋은 상품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지점을 방문해 가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직원으로부터 선·후순위 투자에 관해 전혀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당시 직원이 브로슈어 들고 “벨기에 정부 기관이 장기 임차한 건물에 투자하는 상품이라서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배당수익률 연 6~7% 준다”고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펀드 선순위·후순위 및 LTV(담보대출비율) 유무는 만기 5년이 되는 2024년 5월 수익자 총회에서 처음 알게 됐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측은 그 자리에서 “지금 매각하게 되면 원금이 다 날아가므로 만기를 5년 더 연장해 달라. 최선을 다해 살려보겠다”고 했고 투자자 대부분은 동의했다.
그러나 벨기에 펀드는 그해 12월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을 했고 투자자는 원금을 모두 잃고 말았다. 한국투자증권의 손자회사(한국투자신탁운용 자회사)에서 2022년 물적분할 후 한국금융지주 직접적인 자회사가 된 점도 펀드 부실을 예상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피해자는 “펀드 위험성에 대해 전혀 고지받지 못했다. 상품 설명서에 선순위가 있고 LTV 60%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책자를 받은 적이 없다”며 “펀드 운용도 부실했다. 담당자가 중간에 5명 바뀌었다. 가입할 땐 한국투자신탁운용이었는데 3년 있다가 한국투자리얼에셋으로 물적분할을 했다. 적자가 커 한국금융지주 자회사로 넘긴 거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불완전판매, 건별로 확인 중”
금감원은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관련 서류를 받고 불완전판매 여부 조사에 나선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사가 제출한 관련 서류·녹취 등 자료를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 회사 차원의 불완전판매였는지 등 건별로 확인하고 있다”며 “회사 입장이 맞는 건지, 민원인이 맞는 건지 조만간 최종 결론을 내려 회신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벨기에 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사안별로 검토해 배상에 나설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 같은 문제가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사안별로 다를 수 있어 내부적 기준을 토대로 건별로 살펴보고 있다”며 “불완전판매 인정하고 안 하고는 지금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는 하나씩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상품을 많이 팔면 고객 수도 늘어나 민원이 많아 보일 수 있어 내부통제 문제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면서 “판매업이다 보니 직원 교육을 계속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이런 일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 신경 쓰겠다”고 덧붙였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