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불확실한 여건을 종합해 볼 때 금리인하 기조를 이어 나가되 이번에는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어떻게 변화할지 좀 더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이날 오전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75%로 동결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관세정책의 강도와 주요국의 대응이 단기간에도 급격히 변하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조차 설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향후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저를 제외한 금융통화위원 6명 모두 앞으로 3개월 전망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보다 낮아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완화 기조에는 변함이 없지만 대내외 여건을 고려해 속도와 폭을 조절하겠단 뜻을 거듭 확인했다.

그는 “금통위원 다섯 분은 성장과 물가를 봤을 때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정책 불확실성, 금융안정, 자본 유출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금리를 동결하고 지켜보자는 의견을 냈다”며 “지금은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 이때는 스피드를 조절하면서 밝아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5월 인하론’에 대해서는 경제 지표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2월 이 총재는 연내 2~3차례 금리 인하 기대감은 합리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확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5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이 얼마나 낮아질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다음 금통위가 대선(6월 3일) 일주일 전에 열리는데 통화정책과 수정 경제 전망을 두고 정치적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경제 상황만 보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날 금통위원의 소수의견이 나오면서 5월 인하론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성환 위원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신 위원은 경기 하방 속도와 관세 영향을 보면 성장이 생각보다 나빠질 수 있다며 큰 폭의 금리인하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신 위원은 부동산 가격(가계부채), 환율 우려가 사라지면 인하 속도를 빠르게 하자는 뜻으로 ‘큰 폭’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달 발표하는 수정경제전망에서 성장률이 대폭 조정될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1분기 정치적 불확실성이 생각보다 오래 이어진 영향으로 1분기 성장률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로 인한 기저효과 때문에 성장률이 낮아지는 영향도 있어서 올해 성장률이 상당히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1분기에 예상보다 더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지체되면서 소비 등 내수와 경기가 많이 부진했다”며 “최근 들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이뤄지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완전히 내려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과 관련해선 “미국과의 금리차를 기계적으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며 “통화정책 방향은 영향을 받겠지만 우리나라 경기 상황을 우선적으로 볼 것”일고 했다.

추경(추가경정예산)과 관련해서는 “(지난 1, 2월)이례적으로 추경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계엄사태로 경기가 악화했고 경기 부양책이 발표되지 않으면 올해 1월 발표되는 해외 기관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며 “추경 발표를 통해 한국 경제와 정치가 분리돼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이를 통해 국가 신인도 등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12조원 추경이 이뤄지면 경제성장률 0.1%포인트(p)를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며 “어느 곳에 지출하느냐가 영향을 미칠텐데, 추경안이 결정되면 정확히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환율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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