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회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당시 예비후보)가 지난달 21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의 이 말 한마디에 주식시장은 요동쳤다. 자사주 비중이 높은 회사는 어딘지, 소각이 필요한 기업은 어딘지, 투자자들은 종목을 솎아내느라 바빴다.

자사주는 회사가 직접 매입해 보유 중인 자사 발행 주식으로 유통주식 수를 줄여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소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대주주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대주주가 자사주를 실질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병폐로 지목돼 왔다. 

실제 자사주를 쌓아두기만 한채 소각하지 않은 국내 기업들이 적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주식에서 자사주가 10% 이상 차지하는 상장법인은 총 231개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5% 이상 20% 미만인 곳은 56개사, 20% 이상 30% 미만은 44개사, 30% 이상 40% 미만은 10개사로 상당했다. 심지어 자사주 비중이 40%를 초과하는 기업도 8곳이나 됐다. 

신영증권이 대표적이다. 신영증권은 총발행주식 중 자사주를 무려 53.1%나 보유하고 있다. 2596개 상장주식 종목 중 가장 높다. 지배구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원국희 명예회장과 원종석 회장 등 신영증권 오너 일가의 지분은 전체 20.6%에 그친다. 그러다 보니 자사주를 ‘쌈짓돈’ 마냥 쌓아놓으며 낮은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상황이다.

신영증권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주식 165만주를 매입했다. 취득금액 기준 868억원 어치다. 이 기간 신영증권이 연평균 800억원가량의 순이익을 거뒀다는 것을 고려하면 절대 적지 않은 규모다.   

반면 같은 기간 자사주 소각은 전혀 없었다. 그 사이 의결권 없는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 30%대였던 자사주 비중을 50%대로 키웠다. 일부는 상여금 명목으로 대표이사인 원종석 회장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20% 지분에 그치고 있는 원종석 회장과 부친인 원국회 명예회장이 경영권 방어는 물론, 승계 수단으로 자사주 카드를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영증권 뿐만이 아니다. ▲일성아이에스(자사주 비중 48.75%) ▲조광피혁(46.57%) ▲텔코웨어(44.11%) ▲부국증권(42.73%) ▲매커스(41.05%) ▲모토닉(40.54%) 등도 자사주 비중이 적지 않다. 대부분 오너일가가 자사주를 활용해 낮은 지분으로 회사를 장악하는 지배구조 구조를 갖춘 회사들이다.

자사주는 아무 잘못 없다. 매입 후 소각하지 않고 경영권을 확대하는 데 쓰일 때 부작용을 초래한다. 기업가치 훼손은 물론이다. 소각 기대로 최근 주가가 오르긴 했으나 신영증권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1배로 저평가 상태다. 한 때 증권업계 10위권 수준으로 평가받던 신영증권은 지금 중소형 증권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유력 대선후보의 지적처럼 자사주 소각의 필요성은 이제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단기적으로 주가 저평가 해소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주들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영 환경 구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벤트와 맞물려 주식시장도 자사주 소각 제도화를 통해 제대로 된 주주환원 확대의 계기를 만들어 내길 기대해 본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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