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료조사나 분석을 보좌진보다 챗GPT에 더 의존한다. 대한민국의 데이터를 모으고 국가 차원의 ‘소버린 AI(주권 인공지능)’ 체계 구축도 해야 한다.”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남긴 이 한마디는, 한국형 AI가 ‘이재명 시대’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대선 후보가 된 후 주요 공약으로 AI 기술의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는 ‘소버린 AI’를 전면에 내세웠고, 국민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한국형 챗GPT’ 개발을 약속했다.
일반적인 의미의 소버린 AI는 특정 국가가 자체 인프라와 데이터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통제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뜻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기업들의 해석은 제각각이다. 일례로 국내 대표 IT 기업인 KT와 네이버가 모두 ‘소버린 AI’ 구축을 선언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주권’의 대상은 서로 다르다.
먼저 KT는 기술이 외산이더라도 한국이 통제할 수 있다면 소버린 AI라는 입장이다. 즉, 기술보다는 데이터에 대한 주권 확보를 중시하는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해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오픈AI의 GPT-4o를 기반으로 언어모델(LM)을 개발하지만 KT는 데이터의 국내 상주와 전 생애주기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최지웅 KT클라우드 대표는 "글로벌 기술을 수용하더라도 데이터와 보안의 주도권만 확보되면 소버린 AI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다르다. 자국 중심의 완전한 기술 자립을 소버린 AI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어에 최적화된 자체 LLM ‘하이퍼클로바X’를 중심으로 전략을 추진하는 이유다. 국내 AI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하이퍼클로바X의 경량화 모델 3종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기도 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외산을 들여와 국내 상표를 붙였다고 소버린이라 칭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 수준”이라며 KT를 저격하고 나섰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고려할 때, 이재명 대통령이 추구하는 소버린 AI의 철학적 기반은 데이터 주권을 강조하는 KT의 접근과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형 챗GPT’라는 실질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네이버처럼 자체 기술력 확보가 필수다. 대통령이 제시한 ‘전 국민 무료 챗GPT’는 단순한 기술 주권 선언을 넘어, 고품질 대화형 모델과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 포괄적인 대국민 서비스를 아우르는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한다. 결국 한국형 소버린 AI는 데이터 주권을 강조하는 KT의 철학과, 자체 기술력을 확보한 네이버의 실행력이 혼합된 구조 위에서 추진되고 있다.
현재 소버린 AI를 둘러싼 논쟁은 각 주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권’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디지털 주권의 본질은 용어의 소유권이 아닌 국민이 AI를 통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있다. 기술 자립도, 데이터 보안도, 서비스 개방도 모두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말 열린 소셜벤처·스타트업 간담회에서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소버린 AI라고 부르는데, 국가 단위의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해야 한다. 누가 주체가 되느냐가 중요한데, 국가가 하면 효율이 떨어지고 민간이 하면 독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두 가지 장점을 잘 섞어야 한다.”
누가 더 올바른 소버린 AI인지 따지기 전에, 그 AI가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 결국 소버린 AI의 진정한 가치는 누가 더 ‘정통’ 소버린 AI인지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얼마나 국민 중심으로 설계되고 운영되는지에 달려 있다.
김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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