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센트의 국내 기업 인수설에 업계가 술렁였다. 넥슨에 이어 카카오모빌리티까지 거론되자 텐센트는 19일 공식 부인했지만, 인수설은 일단락됐을 뿐 그 여진은 여전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텐센트가 한국 산업에 미치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지분 확대 통한 영향력 강화… 반복되는 ‘넥슨 인수설’
1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텐센트는 넥슨과 카카오모빌리티 인수설에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국내외 언론에선 텐센트가 고(故) 김정주 창업주의 유족 측과 접촉해 넥슨 인수를 타진했고, 카카오모빌리티 지분 40%를 매입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당사자인 넥슨의 지주사 NXC와 카카오모빌리티는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텐센트는 2019년 넥슨 매각설이 불거졌을 당시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된 전력이 있다. 당시 10조원에 달하는 넥슨의 몸값 탓에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텐센트는 이후로도 국내 주요 기업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텐센트는 크래프톤(2대 주주·지분율 13.86%)과 넷마블(2대 주주, 17.52%), 시프트업(2대 주주, 34.85%), 카카오(3대 주주·6%), 카카오게임즈(3대 주주·3.88%) 등 국내 주요 게임사와 YG엔터테인먼트(4대 주주, 4.3%) 등 게임·엔터 영역에 전방위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영향력을 늘리고 있다.
업계는 넥슨이 검증된 글로벌 게임 IP를 다수 보유한 만큼, 텐센트가 향후 다시 인수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텐센트는 글로벌 확장을 위해 IP 경쟁력을 갖춘 대형 매물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략적 투자인가, 조직적 지배인가
텐센트는 지난 10년간 약 1500건의 글로벌 투자 거래를 성사시키며 ‘투자 제국’으로 불릴 만큼 공격적인 M&A 전략을 이어왔다. 특히 중국 내수 시장 성장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게임·콘텐츠·플랫폼 분야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왔다.
게임 분야에서 대표적인 사례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가 있다. 텐센트는 2011년 해당 회사의 지분 92.78%를 확보한 데 이어 2015년에는 나머지 지분도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핀란드의 슈퍼셀 역시 초기 컨소시엄 투자를 거쳐 2019년 과반 지분(51.2%)을 확보하며 지배력을 강화했다.
텐센트는 피투자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경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운다. 표면적으로는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강조하지만, 주요 주주로 올라서면 이사회 구성이나 M&A 등 핵심 경영에도 관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아직 텐센트의 소수 지분 투자가 대부분이지만, 시프트업처럼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준으로 확대된 사례도 있어 경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시프트업은 텐센트가 2022년 지분 20%를 확보한 뒤 2023년 말에는 이를 40%까지 늘려 주요 경영 판단에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전략적 투자 명분 아래 단계적 지배력 확대를 꾀하는 방식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게임학회 “핵심 산업 조직적 지배” 경고
한국게임학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텐센트의 넥슨 인수 시도는 단순한 민간 거래가 아니라 대한민국 핵심 산업에 대한 조직적 지배 시도다”라고 지적했다. 정부에는 게임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외자 인수에 규제 장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텐센트는 초기에는 협력 파트너로 진입한 뒤 재무적 어려움에 놓인 기업에 구원 투자로 지배력을 강화해 온 사례가 있다. 자금난에 빠진 유비소프트의 지분을 25% 매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장기적으로는 시장 지배력 독점, 기업 지배구조 왜곡 등 구조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 제국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텐센트가 3월 발표한 2024년 연간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텐센트가 보유한 투자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17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00% 자회사가 아닌 ‘투자’ 형태만 기준으로 한 것으로, 인수한 라이엇 게임즈·슈퍼셀을 포함 시 실제 투자 자산 규모는 2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천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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