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와 시스템이 유사한 게임이 범람하는 시장에서 디렉터의 존재감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발자 철학과 비전이 게임 정체성을 만들고, 이를 통해 소비자 기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 챗 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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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 네임밸류=게임 마케팅

유명 디렉터가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게임이 흥행하는 건 아니다. 다만 게임 출시 전부터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잠재적 구매자들로부터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 북미·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디렉터의 네임밸류가 마케팅의 한 축으로 자리잡아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소울라이크 붐을 일으킨 미야자키 히데타카, 철학적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한 요코 타로, 엘더스크롤과 폴아웃 시리즈를 개발한 토드 하워드, 그리고 바이오쇼크의 세계관을 만든 켄 레빈 등이 있다.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 그는 2005년 엔씨소프트에서 블레이드&소울 아트 디렉트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후 2013년 시프트업을 창업했다.  2022년 승리의 여신 니케, 2024년 스텔라 블레이드를 출시하며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시프트업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 그는 2005년 엔씨소프트에서 블레이드&소울 아트 디렉트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후 2013년 시프트업을 창업했다.  2022년 승리의 여신 니케, 2024년 스텔라 블레이드를 출시하며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시프트업

우리나라에도 존재감 있는 디렉터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시프트업의 김형태 대표다. 그는 '블레이드앤소울'에서 독창적인 캐릭터 디자인과 색채 감각으로 주목받았다. '데스티니 차일드'에서는 국내 최초로 라이브2D 기술 상용화를 이끌며 비주얼 차별화를 선도했다. 최신작 ‘스텔라 블레이드’에서도 유려한 캐릭터 연출로 국내외 팬층을 확보했다.

김용하 넥슨게임즈 IO 개발 본부장은 우리나라 서브컬처 장르의 지평을 연 인물이다.  2021년 블루아카이브를 총괄하며 한국과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 누적 매출 9400억원, 다운로드 1300만건을 기록하는 성과를 이끌었다. / 넥슨게임즈
김용하 넥슨게임즈 IO 개발 본부장은 우리나라 서브컬처 장르의 지평을 연 인물이다.  2021년 블루아카이브를 총괄하며 한국과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 누적 매출 9400억원, 다운로드 1300만건을 기록하는 성과를 이끌었다. / 넥슨게임즈

넥슨게임즈의 김용하 PD는 국산 서브컬처 장르의 지평을 연 인물로 꼽힌다. 그가 총괄한 ‘블루 아카이브’는 서브컬처의 본고장인 일본 시장 공략에 성공하며 글로벌 누적 매출 9000억원을 돌파했다. 단순 매출을 넘어 산업적·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차기작 ‘프로젝트 RX’를 이끄는 그는 IO본부장으로서 서브컬처 전문 개발조직을 구축하고 지식 공유를 주도하며, 프로젝트 전반에 철학과 방향성을 더하고 있다.

‘차세대 네임드’ 키우는 움직임도

신규 프로젝트에 디렉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흐름도 눈에 띈다. 

한대훈 시프트업 PD는 넥슨 데브캣에서 마비노기 그래픽 아티스트로  게임업계에 입문한 뒤 엔씨소프트에서 블레이드&소울 개발에 참여했다. 2015년 1인 개발사를 설립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독립적 개발 경험을 쌓았다. 2025년 3월 시프트업에 합류해 프로젝트 스피릿의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 시프트업
한대훈 시프트업 PD는 넥슨 데브캣에서 마비노기 그래픽 아티스트로  게임업계에 입문한 뒤 엔씨소프트에서 블레이드&소울 개발에 참여했다. 2015년 1인 개발사를 설립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독립적 개발 경험을 쌓았다. 2025년 3월 시프트업에 합류해 프로젝트 스피릿의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 시프트업

시프트업은 신작 ‘프로젝트 스피릿’의 총괄 디렉터로 한대훈 PD를 영입했다. 그는 1인 인디게임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해 액션스퀘어에서 트리플A급 프로젝트 ‘던전 스토커즈’를 진두지휘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액션·VR·인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독창적인 시도를 해온 만큼 시프트업의 서브컬처 기반 신작에 새로운 색채를 더할 인물로 기대를 모은다.

박정식 하운드13 대표(왼쪽)는 아이덴티티게임즈 공동 창업자로 드래곤 네스트 개발을 총괄했다. 2014년 하운드13을 설립해 헌드레드 소울을 출시하고 2021년 가레나로부터 2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 웹젠
박정식 하운드13 대표(왼쪽)는 아이덴티티게임즈 공동 창업자로 드래곤 네스트 개발을 총괄했다. 2014년 하운드13을 설립해 헌드레드 소울을 출시하고 2021년 가레나로부터 2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 웹젠

웹젠의 하반기 신작 ‘드래곤 소드’는 박정식 하운드13 대표가 이끌고 있다. 박정식 대표는 전작 ‘헌드레드 소울’을 통해 역동적인 액션 연출과 실시간 전투 구현에서 강점을 보였던 인물이다. 방대한 오픈월드 속에서 액션 노하우가 신작에 어떻게 녹아들지가 관전 포인트다.

배재현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1997년 엔씨소프트에 입사해 리니지, 리니지2 개발에 참여하고 블레이드&소울 총괄 프로듀서 및 CCO(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를 역임하는 등 회사의 대표 IP를 주도한 핵심 개발자로 꼽힌다. / 엔씨소프트 
배재현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1997년 엔씨소프트에 입사해 리니지, 리니지2 개발에 참여하고 블레이드&소울 총괄 프로듀서 및 CCO(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를 역임하는 등 회사의 대표 IP를 주도한 핵심 개발자로 꼽힌다. /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의 차세대 프로젝트 ‘LLL’ 총괄은 배재현 부사장이 맡고 있다. 리니지2, 블레이드앤소울 등 전통 MMORPG를 성공시킨 개발자 출신으로 이번에는 슈팅·MMO·오픈월드를 융합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엔씨의 개발 철학에 기반한 이색적인 게임 경험을 예고하면서 개발 단계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는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고 개발 일정과 완성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흥행작 경험이 있는 디렉터는 높은 인지도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출시 전 마케팅과 라이브 서비스 과정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검증된 디렉터 믿고 투자한다

게임사들이 디렉터의 역량과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개발사에 베팅하는 사례도 흔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위메이드 투자다. V4 개발을 총괄했던 손면석 PD와 이선호 디렉터 등이 설립한 매드엔진에 두 차례에 걸쳐 총 800억원 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이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매드엔진의 대표작 ‘나이트크로우’는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위메이드의 핵심 타이틀로 자리잡았다.

드림에이지는 박범진 전 넷마블네오 대표가 설립한 아쿠아트리에 300억원을 투자했다. 그는 ‘리니지2 레볼루션’과 ‘제2의 나라’ 등 대형 모바일 MMORPG의 성공을 이끈 인물이다. 현재는 신작 ‘아키텍트: 랜드 오브 엑자일’을 개발 중이다. 이외 엔씨소프트는 서브컬처 게임에 전문성을 지닌 '빅게임스튜디오(브레이커스: 언락 더 월드)'에 370억원을 투자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검토 시 해당 개발사 혹은 대표적인 디렉터의 레퍼런스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기간 여러 분야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복잡한 개발 과정 속에 게임을 완성해 흥행까지 시켜본 노하우를 높은 벨류로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천선우 기자 
swch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