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당초 금융위원회의 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원과 통합해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최근 한국은행이 감독 권한 확대를 공식 요구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자칫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간 기관 권한 다툼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이다.
금융산업에서 ‘감독’ 권한은 막강한 힘을 가진다. ‘할 수 있는 것 빼고는 모두 할 수 없는’ 규제 산업인 만큼, 감독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구조에서 감독 권한을 가진다는 건 단순한 행정 기능을 넘어선 ‘실질적인 권력’으로 통한다. 금융권에서 금융위, 금감원 등 관련 기관의 위상과 영향력이 막강한 이유다.
이 때문에 감독권을 둘러싼 분쟁은 곧 기관 간 힘겨루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금융위와 금감원 간의 역할 충돌에 더해, 최근에는 한국은행까지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재부, 금융위, 금감원, 한은이 거시건전성 정책을 논의하고, 한은이 이를 강하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사나 조사 권한이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국정기획위원회에 거시경제 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안정 정책 체계 개편안을 전달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담보인정비율(LTV), 경기대응완충자본,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의 결정에 한은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겼다.
여기에 금융기관 단독 검사권, 비은행 금융기관 자료 제출 요구권, 감독권 등 한국은행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외환위기 전 한국은행 산하에 있던 ‘은행감독원’ 기능을 되찾겠다는 의지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직개편을 두고 금융위는 조직 존치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나섰고 금감원의 경우, 고위 간부들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찾아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 기관이 각자 자신이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하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주도권 가지려는 모습이다.
문제는 개편 논의가 본래의 취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금융소비자 보호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대통령은 “(기재부의) 예산 기능은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위는 국내 금융정책을 맡고, 기재부는 해외금융을 맡는데, 금융위가 정책과 감독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구조는 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정위의 조직개편안도 이 맥락에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각 기관은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자신들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금융산업 발전이나 금융감독의 효율성이라는 논의의 출발점과는 갈수록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은 권한을 가져가느냐가 아니다. 각 기관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정립하는 일이다.
개편안을 두고 각 기관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간 말로만 거론되던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실제로 논의되기 시작한 만큼, 일정한 진통과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각 기관 내부에서는 조직의 위상과 존립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긴장이 불가피하다.
새 정부는 검찰개혁 등을 통해 그간 권력기관으로 군림해왔던 기구들의 힘을 분산, 국민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금융도 마찬가지일터다.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 그리고 감독체계의 명확한 책임 구분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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