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가 최근 공개한 GPT-5는 단순한 성능 향상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는 인공지능(AI)이 “박사급 전문가 수준의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이정표다. 특히 GPT-4o에서 멀티모달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이후, 추론 전문 모델인 o1을 거쳐 GPT-5에 이르기까지의 진화는 AI가 ‘보조적 도구’를 넘어 전문적 의사결정의 동반자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GPT-5는 ‘모든 것을 아는 AI’라기보다, 필요할 때 정확히 생각할 줄 아는 AI를 지향한다. 샘 올트먼이 “당신의 손 안에 박사급 조언자를 담았다”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GPT-5는 단순히 인터넷 상의 데이터를 요약하는 수준을 넘어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고, 다단계로 논리적 사고를 전개하며, 실제 세계의 제약조건 속에서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는 지난 5월 공개된 GPT-4o가 멀티모달 상호작용을 통해 ‘감각’을 얻었다면, GPT-5는 그 감각 위에 ‘지성’을 탑재한 셈이다. 이러한 진화는 단순한 파라미터 수나 연산능력 증가 때문만은 아니다. 핵심은 GPT-5가 도메인 특화 에이전트들과 연동 가능한 아키텍처, 즉 온디맨드 AI 서비스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설계됐다는 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개발자와 기업은 GPT-5를 단순 API가 아닌, 문제를 함께 풀어갈 협업 파트너로 활용하게 된다.
GPT-5는 '온디맨드 소프트웨어' 시대를 실현하는 인프라이기도 하다. 기존의 SaaS(Software as a Service)가 특정 기능을 가진 고정형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면, GPT-5 기반 서비스는 사용자의 문제에 따라 ‘실시간 구성된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법률 자문이 필요할 땐 GPT-5가 법률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 알고리즘을 구성하고 공학적 설계가 필요할 땐 수식과 시뮬레이션 기능을 조합해 설계를 돕는다. 이는 기업 운영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 이제는 기능 중심의 정적 조직이 아니라, 문제 해결 중심의 동적 조직으로 나아가야 한다. GPT-5는 사용자의 목적과 상황에 따라 에이전트를 구성해 실시간 협업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생산성 향상을 넘어 조직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촉매가 된다.
GPT-5는 기술적 성취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비판적 시선 또한 필요하다. 가장 먼저 지적할 부분은 기술보다 마케팅이 앞선다는 우려다. “주머니 속 박사급 전문가 팀”, “역사상 초능력”과 같은 과도한 표현은 사용자에게 과장된 기대감을 줄 수 있으며 여전히 4.8%의 환각률(hallucination)이 존재한다는 점은 특히 의료나 공공 부문에서 치명적일 수 있다. 완전성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불확실성을 기술 민주화라는 수사로 덮는 것은 위험하다. 또 하나는 AGI(범용 인공지능)에 대한 불명확한 정의다. 샘 올트먼은 GPT-5를 AGI로 가는 결정적 한 걸음이라 표현하지만, 그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는 오히려 기술 발전에 대한 건전한 토론을 방해하고, 투자자 및 파트너와의 계약적 전략의 일부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AGI라는 개념은 기술적 성과 이상으로 정치적∙경제적 수사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투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GPT-5는 “모두를 위한 도구”처럼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고급 구독 플랜과 기업 고객을 타깃으로 한 수익 모델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무료 사용자에게도 접근 권한을 제공하지만, 여전히 사용량과 기능에 제한이 있으며 진정한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계를 가진다. 기술이 사회 전반에 고르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디지털 리터러시와 접속 환경 등 비기술적 요인에 대한 고려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 또한 GPT-5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책임성도 중요하다. 실리콘밸리 주요 인물들은 종종 기술 결정론적 관점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러나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대규모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 정보의 진위 여부 문제, 디지털 격차 심화 등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재편을 요구하는 과제다.
GPT-5의 오픈은 한국에도 중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단순히 “또 하나의 뛰어난 모델이 나왔다”는 소식이 아니라, 이제 AI 경쟁의 중심축이 모델 경쟁에서 활용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내 기업과 기관은 여전히 AI를 ‘보조 시스템’이나 ‘업무 자동화’ 수준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GPT-5는 단순 반복 작업뿐 아니라 기획, 전략, 의사결정, 협상, 창작 등 고차원적 업무에도 투입 가능하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AI와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국내의 AI 생태계는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 혹은 파편화된 SW 기술에 머물러 있으며, 프론트엔드 UX/UX, 보안 컴플라이언스, 데이터 품질관리, 에이전트 통합 오케스트레이션 역량 등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GPT-5의 오픈은 산업계뿐 아니라 교육과 공공 정책에도 변화의 신호탄이 된다. AI가 박사급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시대에 인간은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닌, AI를 활용하는 사고력, 문제 재정의 능력, 윤리적 판단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GPT-5는 단지 한 단계 더 진화한 AI가 아니다. 이는 “문제를 같이 해결해주는 지적 존재”가 실현되었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이 존재는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되며, 기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영향력 모두를 성찰하는 균형 잡힌 시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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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는 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로 투이컨설팅 자문과 한국 경영학회 디지털 경영 공동위원장, 법무 법인 DLG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오라클과 한국 IBM 등 IT 업계 경력과 더불어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 산학협력 교수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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