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지금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AI가 가져올 기회와 혁신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으며, 투자 시장에서는 ‘AI’라는 이름만으로 기업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전망 뒤에서는 과도한 기대가 실제 가치를 뛰어넘었다는 우려, 즉 ‘AI 버블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술의 본질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과열된 기대와 투기적 자본이 시장을 흔드는 모습은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는 이러한 논란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엔비디아는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56% 증가한 467억달러(약 64조9923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핵심 사업인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이 시장의 기대치에 약간 못 미치자 주가가 하락했다. 이는 단순히 실적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실적은 좋지만, 기대는 더 크다’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 현상이다. 엔비디아가 3분기 매출 전망치를 540억달러로 제시하고 6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까지 내놓으며 자신감을 표했음에도,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한 것은 AI 버블론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작동하는 현실임을 보여준다.
학계와 연구기관의 분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MIT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화려한 투자 유치 소식과 달리 생성형 AI 프로젝트의 95%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실패하거나 중단되고 있다. 많은 기업이 ‘AI로 모든 것이 바뀐다’는 낙관적 담론에 기대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데이터 거버넌스, 보안, 결과의 신뢰성 같은 현실적 장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념검증(PoC)' 단계에 머무르다 사업을 접는 사례가 부지기수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우려는 AI 업계 핵심 인사들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투자자 전체가 과열된 것 같다”고 경고하며 닷컴 버블을 언급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 General Catalyst의 헤만트 타네자 대표는 지금의 상황을 “애매함의 정점(peak ambiguity)”이라고 표현하며, 투자가치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자본이 무분별하게 흘러가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는 시장 내부에서도 현재의 AI 붐을 단순히 ‘혁신의 시대’라기보다 ‘과열과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시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AI를 단순히 거품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AI는 닷컴 버블 시대의 인터넷 기술과 달리 이미 탄탄한 기반 위에 서 있다. 클라우드 인프라는 전 세계에 구축되어 있고, GPU 생태계는 역대급 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방대한 데이터가 쌓여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AI가 이미 다양한 산업에서 실질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AI가 영상 판독의 정확도를 높이고 신약 후보 물질을 탐색한다. 제조업에서는 생산 라인을 최적화해 효율을 극대화하며, 금융 분야에서는 사기 거래를 탐지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가 됐다. 닷컴 버블이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기반했다면, AI는 이미 현재진행형 성과를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역사를 돌아보면, 거품은 늘 혁신의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철도, 전기, 인터넷 모두 초기에는 과열과 붕괴를 거쳤지만, 결국 인류 문명의 기반을 다지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 버블이 불러온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인재를 대거 끌어들여 기술 발전을 가속화하는 순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 기업은 거품 속에 사라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AI는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사회 구조를 재편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거품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진짜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과 기술을 가려내는 안목이다.
이러한 AI 버블 논의 속에서 한국이 직면한 과제는 더욱 분명하다. 지금까지 국내 많은 기업이 글로벌 빅테크의 기술을 도입하는 데 만족했지만, 이제는 특정 영역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반도체, 데이터, 그리고 산업별 특화 AI 서비스는 한국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핵심 분야다.
또한, 국내 기업들이 개념검증(PoC) 단계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넘어 스케일업(Scale-up)과 상용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정부 역시 무분별한 투기를 억제하는 동시에 책임 있는 규제와 과감한 투자 지원을 균형 있게 설계해야 한다. 특히 ‘책임 있는 AI 거버넌스’를 제도화해 데이터 보호와 윤리적 활용을 보장하면서도 기업들이 자유롭게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결국 AI 버블론은 단순한 과장도, 근거 없는 낙관도 아니다. 그것은 기술의 진보와 과도한 기대가 동시에 얽힌 복합적인 현상이다. 분명 거품은 존재하지만, AI가 만들어내는 산업적 파급력은 그것을 넘어서는 진짜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적 과열을 두려워하며 뒷걸음질 치는 태도가 아니라, 분별력 있는 선택과 장기적인 전략이다. 거품은 언젠가 꺼지겠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은 AI는 결국 새로운 시대의 기준이 될 것이다. AI 네이티브 시대는 이미 와 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는 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로 투이컨설팅 자문과 한국 경영학회 디지털 경영 공동위원장, 법무 법인 DLG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오라클과 한국 IBM 등 IT 업계 경력과 더불어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 산학협력 교수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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