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추진하며 한·미 조선업 협력안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의 보폭을 한층 넓히고 있다. 한화그룹은 2024년 인수한 한화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위한 투자를 본격화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도 나설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한화필리조선소 전경. / 한화그룹
미국 한화필리조선소 전경. / 한화그룹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한화는 한화필리조선소에 투입하기로 한 50억달러(약 7조원)를 통해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위한 기반 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기존 디젤 잠수함과는 설계 구조가 전혀 다른 핵추진 잠수함 생산을 위한 개발에도 착수한다.

현재 한화필리조선소에는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이 없다. 잠수함과 같은 특수선은 보안 유지가 필수이기 때문에 일반 조선소 내에서도 독립된 건조 공간이 필요하다. 현재 한화필리조선소는 도크(Dock·선박 건조 공간) 2개만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한화는 올해 8월 발표한 한화필리조선소 중장기 계획에서 50억달러를 투자해 도크 2개와 안벽 3개를 추가 확보하고, 함정 블록 및 모듈 공급, 함정 건조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투자액 안에서 잠수함 건조를 위한 시설 확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조선사는 아직 핵추진 잠수함을 직접 생산한 경험은 없지만 그간 축적해온 잠수함 개발 및 생산 역량을 고려하면 기술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핵추진 잠수함은 기존 잠수함보다 크기가 커지고 선형이 바뀌는 등 추가 설계와 기술 보완이 필요하다”며 “한국 조선사는 이미 디젤 잠수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온 만큼 핵추진 잠수함 개발 능력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최근 장보고-Ⅲ 배치(Batch)-II 3600톤급 ‘장영실함’을 진수하는 등 잠수함 개발과 생산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며, 수출까지 확대하고 있다. 디젤 잠수함인 장영실함은 국내 독자 설계와 건조 기술로 제작돼 세계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는다. 길이 89미터(m)의 장영실함은 향상된 전투 체계와 소나 시스템을 탑재해 정보 처리 및 표적 탐지 능력을 강화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의 잠수함 건조 능력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 사업에서 독일 기업과 함께 숏리스트(적격 후보)에 선정됐다. 최대 60조원 규모로 평가되는 이 사업 외에도 한화는 8조원 규모의 폴란드 해군 현대화 사업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전에 뛰어들어 신형 잠수함 3척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한화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으로 추진력을 얻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플랫폼 트루스소셜을 통해 “나는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생산 거점으로 한화필리조선소를 직접 언급했다. 이번 승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위한 핵연료 공급 결단을 요청한 지 하루 만에 나온 화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또는 보완, 미국의 기술 지원과 핵연료 공급 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를 추진하기 위한 행정적·정책적 지시를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 간 핵심적이고 중대한 결단을 내린 것을 지지하며 양국 정부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한화는 첨단 조선 기술로 이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 필리 조선소를 통한 투자와 파트너십은 양국의 번영과 공동 안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한화가 핵추진 잠수함을 완성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출석해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의 “장보고-Ⅲ 배치-Ⅲ 건조는 언제 시작되느냐”는 질문에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건조 완료까지는 10여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2030년대 중반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이 언급한 장보고-Ⅲ 배치-Ⅲ는 핵추진 잠수함으로 건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 총장은 향후 건조될 핵추진 잠수함의 배수량에 대해 “5000톤 이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역시 도입 규모와 관련해 “해군과 협의해야 하겠지만 최소 4척 이상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