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저축은행 인수합병(M&A) 소식이 잇따르면서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적자 늪에 빠졌던 업계가 올해 상반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업황 개선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다만 여전히 타 업권 대비 강한 규제를 받는데다 영업환경이 녹록지 않아 이번 흐름이 추가 M&A로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4일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상상인저축은행이 KBI그룹에 인수되면서 5년에 걸친 매각 절차를 마무리했다. KBI국인산업은 상상인저축은행 지분 약 90%를 1107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으며,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 거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KBI그룹은 지난 7월 구미 지역 라온저축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석 달 만에 두 번째 저축은행을 품었다.
이번 매각은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상상인그룹에 내린 행정명령의 후속 조치다.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가 중징계를 받으며 대주주 적격성을 잃자,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지분 90% 이상을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이로써 상상인저축은행은 2019년 이후 이어진 매각 공방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보다 앞서 지난 4월 교보생명은 SBI홀딩스로부터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를 단계적으로 사들이기로 했다. 인수가액은 9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올해에만 세 곳의 저축은행 M&A가 이뤄진 셈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위기설’까지 돌았던 업권이 서서히 정상화 국면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순이익은 257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958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연체율은 7.53%로 약 1%포인트 낮아졌고 자기자본비율도 15.6%로 소폭 개선됐다.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대규모 증자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이미 재무구조가 개선된 저축은행은 경쟁력 있는 ‘매물’로 여겨진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M&A 흐름이 구조조정이 필요한 중소형 저축은행으로까지 번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저축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상인저축은행 매각은 당국의 행정명령에 따른 불가피한 거래”라며 “자율적 수요에 의한 M&A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적 개선의 대부분은 수도권 대형사에 집중돼 있다. 지방 중소형 저축은행들은 여전히 실적 개선이 더딘 상황이다.
또 흑자 전환의 배경이 ‘충당금 환입’ 등 회계상 요인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 실제 영업이익보다는 부실채권 손실이 줄며 장부상 흑자가 났다는 평가다. 실제로 저축은행 대손충당급전입액은 지난 1분기 9058억원에서 2분기 7400억원으로 감소했다. 상반기 전체 대손충당금전입액은 1조6550억원으로 전년(2조3285억원) 대비 28.9% 가량 줄었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가계대출 규제, 중장기적으로는 신사업 진출 제약 등 성장 동력 확보에도 한계가 있다. 업계의 숙원으로 여겨지는 예금보험료율 조정, 영업권역 확대,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 비율 완화, M&A 완전 허용, 유가증권 투자 한도 상향 등은 해결이 요원하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월 저축은행 CEO 간담회에서 영업규제 완화의 전제조건으로 건전성 회복을 내걸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연체율이 안정화되지 않으면 규제 완화가 어렵다는 뜻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뤄진 M&A가 업권 재편의 출발점이 될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며 “건전성 회복과 함께 규제 완화가 이뤄지고, 저축은행의 중장기 로드맵이 그려져야 M&A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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