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면서 잠수함이 K-방산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잠수함 건조 역량을 보유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캐나다, 페루, 필리핀 등 해외 잠수함 발주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화오션이 건조한 장보고-Ⅲ 배치-Ⅱ 잠수함. / 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건조한 장보고-Ⅲ 배치-Ⅱ 잠수함. / 한화오션

관련 업계 소식을 종합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 수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양사가 사업 결선 단계인 ‘숏리스트’(적격 후보)에 오른 데 이어,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캐나다 간 방산 협력 강화 논의가 진행되면서다.

캐나다의 차세대 잠수함 사업은 3000톤(t)급 잠수함 최대 12척을 도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총사업비는 약 6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과 ‘원팀(One Team)’으로 참여해 올해 8월 숏리스트에 선정됐으며,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와 2파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캐나다는 오는 2026년 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한화오션은 이번 사업에 3600t급 디젤전기추진 잠수함을 제안했다. 통상 9년이 소요되는 납기를 6년으로 단축해 2032년 첫 인도를 시작으로 2035년까지 4척을 조기 인도하고, 이후 매년 1척씩 인도해 2043년까지 총 12척을 완납한다는 계획이다.

주력 모델인 ‘장보고-Ⅲ 배치-Ⅱ’급은 공기가 필요 없는 ‘공기불요추진장치’(AIP)와 리튬전지체계를 적용해 장기간 수중 작전이 가능하다. 항속 거리는 7000해리(약 1만2900㎞) 이상으로 태평양·대서양·북극해 등 광범위한 작전 환경에서 운용할 수 있다.

정부 역시 캐나다와 방산 협력 강화를 본격화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한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국방 협력 방안을 담은 한·캐나다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캐나다가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와 이 같은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양국은 국방·방산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정상회담 이후 카니 총리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해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 제안된 ‘장보고-Ⅲ 배치-Ⅱ’ 1번함인 장영실함에 직접 승함해 내부를 둘러봤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직접 안내에 나섰으며 카니 총리는 예정된 일정보다 약 30분가량 더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관 부회장은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K-방산 최대 성과 중 하나이자 한국과 캐나다 양국 간 장기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한화그룹의 모든 역량을 총결집하겠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필리핀의 첫 잠수함 도입 사업 수주도 기대하고 있다. 필리핀은 49조원 규모의 ‘군 3차 현대화 사업’을 통해 자국 최초로 잠수함을 도입할 예정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해 경주에서 한화오션 경영진과 만나 잠수함 도입 및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한화오션은 필리핀 현지에 잠수함 기지와 유지·보수(MRO) 센터 건설, 첨단 시뮬레이터 구축을 통한 잠수함 지휘관·운용인력 교육 지원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이 적용된 도산안창호급(3000t급) 잠수함 배치 계획을 설명했다. 필리핀은 이미 HD현대중공업에 호위함·초계함 등 10척을 발주하는 등 한국 방산업체와 긴밀히 협력해 왔기에, 잠수함 분야에서도 수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외에도 한화오션은 폴란드의 ‘오르카(ORKA) 프로젝트’ 수주에도 나서고 있다. 이 사업은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8조원 규모 프로젝트로, 한화오션은 조만간 폴란드 측에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16년 한국 해군에 인도한 장보고-Ⅱ 잠수함 ‘윤봉길함’. / 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16년 한국 해군에 인도한 장보고-Ⅱ 잠수함 ‘윤봉길함’. / 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은 페루의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울산 본사에서 페루 국영 시마(SIMA)조선소와 ‘페루 잠수함 공동개발 및 건조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번 LOI는 지난 2024년 11월 페루 APEC 정상회의에서 체결한 양사 간 양해각서(MOU)와 올해 4월 국제방산·재난대응 기술전시회(SITDEF)에서 맺은 합의각서(MOA)의 후속 조치로, 페루 해군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을 위한 공동개발 및 건조 계약 조건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양사는 앞으로 ▲잠수함 공동개발 및 생산 협력방안 ▲기술이전 및 산업 협력 범위 등을 논의해 단계적으로 설계·건조 계약을 체결하고, 실질적 건조 착수를 추진할 예정이다.

페루 해군은 HD현대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수출형 잠수함 모델 ‘HDS-1500’을 기반으로 1500t급 중형 잠수함을 건조해 노후 함정을 대체할 계획이다. HDS-1500은 길이 63~65미터(m), 폭 6.5m로 연안 작전에 최적화돼 있다.

잠수함 사업 외에도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고 밝히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생산 거점으로 한화필리조선소를 언급했지만, HD현대 측은 “핵추진 잠수함 사업은 단일 기업이 아닌 합동 프로젝트로 추진될 수 있다”며 HD현대의 참여 가능성을 시사했다.

HD현대의 조선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11월 3일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단일 조선소의 기술 역량과 인력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한 대규모 사업”이라며 “사업이 본격화되면 막대한 엔지니어링 역량이 필요해 국회에서도 특정 회사 단독 수행이 아닌 합동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조선업계는 한미 간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미국 측의 긍정적인 태도를 고려할 때 사업 추진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11월 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이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승인한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며 “미국 군 당국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