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주력 모델인 ‘모델 3’와 ‘모델 Y’에서 잇따라 배터리 관리시스템(BMS) 오류가 발생하며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테슬라 측은 명확한 원인 규명이나 리콜 대신 ‘배터리 안심 케어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소극적 대응이 장기적으로 브랜드 신뢰도 하락과 판매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8월부터 불거진 BMS 오류로 테슬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다. 소비자 불만이 폭증하자 테슬라는 뒤늦게 ‘배터리 케어 캠페인’을 발표하며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테슬라코리아는 지난 10월 30일 고객 불편 해소와 국내 전기차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한 단계별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테슬라가 밝힌 조치는 ▲배터리 안심 케어 프로그램 ▲정비 기간 단축 ▲BMS 신속 대응 강화 등 세 가지다. 하지만 차량 결함에 대한 공식 인정이나 오류 코드 ‘BMS_a079’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특히 캠페인 이전에 자비로 수리한 고객에 대한 보상 방안도 없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같은 대응에 일부 소비자들은 국회 국민청원을 통해 ‘BMS 오류 결함 조사 및 리콜’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청원에는 2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일부 차주들은 전광판을 단 트럭 시위에 나설 정도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테슬라의 국내 판매는 여전히 견고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테슬라는 최근 반년간(5~10월) 수입차 모델별 월간 판매 1위를 유지했다. 지난 10월 영업일수 감소로 판매가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모델 Y는 베스트셀링 전기차로 꼽힌다. 올해 모델 Y는 3만759대가 판매돼 2위 BMW 520(1만2408대)을 두 배 이상 앞섰다.
테슬라는 모델 3와 모델 Y 흥행에 힘입어 올해 1~10월 누적 판매량 4만7962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92.8% 증가한 수치로, 시장 점유율은 19.23%를 차지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테슬라의 인기는 이어지고 있다. 중고차 플랫폼 ‘첫차’ 발표를 살펴보면 올해 전기차 중고 거래 1위는 모델 Y로, 거래량이 전년 대비 278% 급증했다. 첫차 관계자는 “모델 Y는 신차 대비 감가율이 커 가성비를 중시하는 20~30대 소비자 중심으로 수요가 높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테슬라의 인기가 ‘브랜드 신뢰’보다는 ‘브랜드 중독’ 현상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테슬라는 무선 업데이트(OTA)로 지속적인 기능 개선을 진행하고, 자사 충전 인프라(슈퍼차저)를 통해 전기차 편의성을 높여왔다. 이러한 기술 중심의 소비문화가 판매를 지탱하는 요인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테슬라의 미온적 대응이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테슬라는 그간 품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적극 해명 대신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소비자들은 OTA 업데이트와 충전 편의성에 매력을 느끼며 이를 감내했지만, 업계는 이러한 ‘무응답 전략’이 결국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테슬라의 기술력과 인프라가 문제를 덮고 있지만, 소비자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BMS와 같이 안전과 직결된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브랜드 신뢰는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테슬라가 한국 시장을 단순한 ‘판매 시장’으로 인식한다면 향후 사이버트럭 등 신차 흥행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며 “신뢰가 흔들리면 혁신도 설 자리를 잃는다”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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