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석 달을 맞은 권혁웅 한화생명 부회장이 회사의 디지털 전환을 직접 챙기고 나섰다. 데이터전략부문을 신설해 부회장 직속으로 두고, 인공지능(AI)을 중심축으로 삼아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직 내 AI 체계를 고도화하면서 권혁웅식 AI 경영이 본격화됐다는 평가다.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지난달 조직개편을 통해 ‘데이터전략부문’을 신설, 부문장에 회사 대표인 권혁웅 부회장을 선임했다. 권혁웅 부회장은 데이터전략부문을 직접 이끌며 데이터 기반 개인맞춤형 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권 부회장은 핵심 동력으로 ‘AI 경쟁력 제고’를 꼽았다. 본인 스스로, “격변하는 금융 환경에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과 혁신을 통해 미래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며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단순 보장 제공을 넘어 고객 데이터 기반으로 전 생애 금융경험을 설계하는 모델로 전환한다는 목표다.
권혁웅 부회장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 카이스트에서 화학공학 석·박사를 받았다. 한화에너지, 한화토탈에너지스, 한화오션 등 산업현장에서 공정·데이터·기술을 함께 다룬 전형적인 엔지니어다.그간 산업현장에서 쌓은 데이터 역량을 보험업에 적용하는 중이라는 업계 관측이다.
올해 8월 사령탑에 앉은 권혁웅 부회장은 수차례 AI를 회사 성장의 핵심 축으로 제시한 바 있다. 지난 10월 열린 ‘AI DAYS 2025’ 행사에서도 AI 기반 보험 혁신을 강조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데이터전략부문을 직접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평가다.
한화생명 AI 조직은 크게 AI실, AI연구소, 한화AI센터(HAC)로 구분된다. AI를 단순 기술이 아닌 경영 시스템으로 판단하고 연구와 현장을 동시에 챙기려는 포석이다.
AI실은 AI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고객 응대, 설계사 지원, 콜 요약, 지급 심사 자동화 등 직접적인 업무 개선을 맡고 있다. 네이버에서 파파고 개발을 이끌고, 현대차그룹 42dot에서 AI 싱크탱크를 이끌었던 김준석 상무가 총괄하고 있다.
김준석 상무는 회사의 주요 업무를 혁신하는 것 자체가 미션이다. 현재 상담·영업·지급 프로세스를 AI로 표준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각 부문별로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업무 효율성과 정확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업 현장에서는 AI 기반 지원 시스템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설계사 전용 'FP 상품상담 AI'와 세일즈 트레이닝 솔루션(AI STS)이 대표적이다. FP 상품상담 AI는 상담 중 필요한 보장 내용이나 약관 정보를 즉시 검색해 설계사가 고객 응대 중에도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제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세일즈 트레이닝 솔루션(AI STS)은 설계사별 상담 데이터를 분석해 설명 순서나 제안 방식의 개선점을 도출하는 데 활용된다. 올해 초에는 AI 컨택센터(AICC)를 도입해 실시간 상담 지원으로 응대 품질을 높였다.
아울러 글로벌 고객과 설계사 소통을 지원하는 AI 번역 서비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플랜을 제시하는 가입설계 AI 에이전트도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AI 기반 암보험 상품도 내놨다. 한화생명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니드와의 협업을 통해 ‘니드 AI 암보험’을 선보였다. 예방부터 치료·회복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암보호시스템’을 상품에 연계해 이용률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비스 대상 고객 30만명 중 19%가 니드 앱을 사용했고, 암 진단 고객의 60%가 치료모드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AI실 산하 장용숙 AI모델링팀장도 이달 상무로 승진했다. 권 부회장 직속 체계에서 AI 담당 임원이 확대되며 조직 전반 AI 체계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연구소는 기술이 금융시장·보험업에 미칠 영향을 중장기적으로 연구하는 곳으로 한화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 김일구 전무가 이끌고 있다.
연구 분야는 크게 ▲AI 기반 자산운용 포트폴리오 ▲개인 디지털 페르소나 ▲헬스케어⋅보험 결합 모델 ▲글로벌 AI 거버넌스로 구분된다. 각 연구는 AI기술을 실제 금융·보험 프로세스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 활용 방안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산운용 부문에서는 시장 변동성과 위험 요인을 학습해 장기 운용 자산의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한다. 또 고객의 금융·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보험과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시하는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개인의 말투나 행동, 소비·건강 패턴을 AI가 학습해 ‘데이터 기반 가상 인격체’를 구현하는 기술이 디지털 페르소나의 핵심이다. 향후 맞춤형 금융과 연계될 가능성이 크다.
한화생명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Hanwha AI Center(HAC)도 운영 중이다. 현지 트렌드를 분석해 보고서를 발간하고, 글로벌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50여개 기업과 협력 검토 중인 멤버십 기반 커뮤니티도 마련했다. 스탠퍼드대 교수 초청 강연 등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도 강화해 임직원 AI 역량을 높이고 있다.
업계는 이번 조직개편이 단순한 ‘AI 확대’가 아니라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재배치로 보고 있다. 데이터 수집부터 편향 통제, 업무효율성까지 하나의 축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권혁웅 부회장이 데이터전략부문을 직속으로 가져간 것도 이 같은 기능을 단일 라인으로 정렬해 속도와 일관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편 한화생명은 8월부터 권혁웅 부회장, 이경근 사장의 각자대표 체제를 운영 중이다. 권 부회장은 AI·데이터·중장기 전략을 담당하고, 이경근 사장은 영업·채널·고객 접점을 총괄한다. 권혁웅의 AI 전담 축과 이경근의 영업 실행 축이 맞물리는 투트랙 체제로 보험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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