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84년작 ‘비디오전사 레자리온(ビデオ戦士レザリオン)’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토에이(東映動画)가 자신들만의 슈퍼로봇 작품을 만들겠다며 선보인 ‘광속전신 아르베가스'의 후계작이다. 닌텐도가 일본에서 패밀리컴퓨터 등 게임기 광고를 한창 진행하고, ‘컴퓨터 네트워크 사회'가 영화와 소설 등에서 주제로 다루어지던 시절, 게임과 네트워크 사회를 융합한 소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비디오전사 레자리온 DVD 패키지 일러스트 / 아마존재팬
비디오전사 레자리온 DVD 패키지 일러스트 / 아마존재팬
애니 제목 속 ‘비디오'는 ‘비디오게임'의 줄임말이다. 슈퍼로봇 레자리온은 주인공 ‘카토리 타카시'가 만든 네트워크 게임용 전투로봇 데이터가 ‘물질전송장치(物質電送装置)'에 의해 현실 세계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비디오전사 레자리온 1화 / 유튜브

레자리온은 당시 대원동화 등 한국 애니 제작사가 그림(작화)을 상당 부분 제작했다.

애니메이션 레자리온은 1화만 갓마즈, 바이팜, 오거스 등의 그림을 완성시킨 ‘모토하시 히데유키(本橋秀之)’가 작화감독을, 독수리오형제, 원탁의기사 등 작품에서 원화와 동화를 그렸던 ‘오치 카즈히로(越智一裕)’가 원화 제작을 담당했다. 2화부터 마지막편인 45화까지 대부분을 대원동화 등 한국 제작사가 그림을 그려냈다. 오치는 중반부터 작화감독을 맡게되지만 제작 스케쥴 문제로 한국에 발주한 원화를 수정하지 못하는 등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알려진 이야기다.

레자리온 마지막화 제작에 참가했던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는 레자리온을 통해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느꼈다라고 잡지 등 현지 매체를 통해 밝혔다. 카나다는 볼테스V, 브라이거 등 다수의 로봇 애니메이션 원화를 담당했던 인물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메카닉 표현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토에이는 레자리온 이후 슈퍼로봇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한발 물러섰다. 레자리온은 장난감 판매 실적도 좋지 못했다. 지금은 없어진 장난감 업계지 토이저널에 따르면 레자리온 장난감 판매매출은 전작인 아르베가스 대비 38%에 그쳤다. 해외 하청으로 인한 제작 한계와 장난감 매출 하락이 토에이를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멀어지게 만든 셈이다.

한편, 대원동화는 당시 작화와 로봇 디자인을 그대로 도용해 극장판 애니 ‘비디오레인져 007’을 선보였다. 일본에서 원판이 방영되던 시기에 도작이 한국에서 극장 상영된 셈이다. 비디오 수입유통업체 대영팬더는 레자리온 더빙판 일부를 한국 시장에 유통했다.

레자리온의 그림을 도작해 만든 ‘비디오 레인져 007’ / 구글
레자리온의 그림을 도작해 만든 ‘비디오 레인져 007’ / 구글
당시 토에이는 해외 스튜디오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제작비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1970년대부터 만연한 적자경영에서 탈피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한국에 하청을 준 것은 1973년부터다. 토에이가 만년적자를 탈피한 것은 1981년부터다. 당시 토에이는 누적영업적자 3억엔에서 영업이익 2억엔으로 흑자 기업으로 전환됐다.

레자리온 일러스트 / 야후재팬
레자리온 일러스트 / 야후재팬
애니메이션 레자리온은 인구증가, 환경오염 등으로 인류가 화성과 달을 산업폐기물 처리장과 범죄자 수용소로 사용하는 가상의 미래를 무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갓하이드 박사는 달에서 군대를 만들고 양산형 전투로봇 ‘블랙베어'를 개발해 지구를 대상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전쟁 와중에 블루하임 박사가 개발한 지구연방군의 물질전송 시스템 실험장에 미사일이 떨어진다. 이 때 PC를 좋아하는 주인공 소년이 만든 게임용 전투로봇 데이터가 지구연방군 컴퓨터에 흘러들면서 컴퓨터 속 데이터 레자리온이 물질전송장치의 힘으로 실제 로봇으로 탄생된다. 주인공은 우연의 일치로 만들어진 레자리온을 타고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따르면 레자리온은 1983년 공개된 할리우드 영화 ‘워게임(WarGames)’을 소재로 이야기가 구성됐다. 영화 워게임은 ‘컴퓨터 네트워크 속 전쟁'을 소재로 컴퓨터로 제어되는 전쟁 시스템과 핵무기의 위험성을 다룬 작품이다. 미국에서 전화를 이용한 해킹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구성됐다.

영화 ‘워게임' 포스터 / 구글
영화 ‘워게임' 포스터 / 구글
레자리온은 1980년대 인기 작품이던 ‘건담'의 영향을 받아 사실성과 복잡한 인간 드라마를 추구하는 리얼로봇 요소도 가미된 작품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지구연방군 장군의 비서가 사실은 스파이였으며, 주인공의 누나가 전투에 휘말려 사망한다는 당초 기획안은 백지화되고 지구 밖 침략자와 싸운다는 전통적인 슈퍼로봇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각본은 아르베가스 스토리를 담당했던 ‘사카이 아키요시(酒井あきよし)’가 맡았다.

참고로, 레자리온의 주인공 카토리 타카시는 건담 주인공 ‘아무로 레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후루야 토오루(古谷徹)’가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우가 같은 탓에 건담에서 아무로가 모빌슈트(로봇) 출격 시에 내뱉는 말인 ‘출발합니다(이키마~스!)’가 레자리온에서도 패러디 형태로 담겼다.

◇ 초전송으로 20만킬로 떨어진 전장까지 순식간에 이동하는 레자리온

슈퍼로봇 레자리온은 주인공 카토리 타카시가 만든 게임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우연한 사고로 게임 데이터가 군사용 네트워크로 흘러들어가 실험중이던 ‘물질전송장치'를 통해 실체화됐다.

게임 데이터에서 탄생된 로봇이지만 크기가 제법 큰 편이다. 토에이 설정 자료에 따르면 레자리온은 높이 기준 35미터 무게는 200톤에 달한다. 슈퍼로봇 대표 아이콘 마징가Z와 리얼로봇 대표주자인 건담이 높이 18미터란 점을 고려하면 두 배쯤에 해당하는 크기다.

레자리온 / 야후재팬
레자리온 / 야후재팬
레자리온은 큰 크기에도 불구하고 최고속도가 ‘무한대(∞)’다. 이는 로봇의 물리적인 속도라기 보다 전송시스템으로 전장 어느 곳이던 순간적으로 보내지는 탓으로 풀이된다.

토에이 설정 자료에 따르면 레자리온은 원자단위로 분해된 뒤 통신회선을 타고 전송돼 목표지점에서 물질이 재구성되는 방식으로 옮겨진다. 물질전송장치의 일부인 ‘초전송 시스템(超電送システム)’은 20만킬로미터까지 거대 로봇을 순식간에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초전송 시스템은 이후 업그레이드가 돼 지구에서 달까지 레자리온을 전송시키는데 성공한다.

레자리온은 로봇 프레임과 파일럿이 탑승하는 ‘레이저 파이터'를 따로 목표지점에 전송하는 방식으로 전장에 보내진다. 외부 프레임인 로봇으로만도 전투가 가능하지만 레이저 파이터가 합체된 상태가 더 전투력이 높아진다는 설정이다.

애니메이션에는 전투기 형태의 레이저 파이터 외에도 탱크 형태의 레이저 탱크 등의 메카닉도 등장한다.

레자리온 액션 피규어 / 야후재팬
레자리온 액션 피규어 / 야후재팬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