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게임 엔진社 당연히 게임 서비스해야"

입력 2019.11.24 06:00

개발자, 스토리 작가, 그래픽·원화 아티스트, 사용자 경험 디자인(UX) 등…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업계 관계자를 직접 만나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박성철 에픽게임즈 코리아 대표 인터뷰
"앞으로도 다채로운 게임 만들고, 살아있는 기능 갖춘 엔진 선보이겠다"
언리얼엔진4는 게임 넘어 영화, 건축·설계, 차량 등 산업계에도 쓰여
한국은 언리얼 엔진 활용, 창의적 플레이 등 ‘특별한 시장’
개발자 도와 건강한 생태계 만드는 것이 목표
"규제 완화하면 한국 게임 시장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게임을 만들어 본 경험에 비춰 정말 필요한 것만 모아 게임 엔진을 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실제 경험 없이 ‘단지 이런 게 필요할 것이다’라는 생각만 가지고 엔진을 만든다면, 요리 도구를 만드는 회사가 요리를 실제로 해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박성철 에픽게임즈 코리아 대표는 게임 엔진 개발사가 게임을 직접 만들어 서비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경험없이 생각으로만 만든 기술은 실제로 현업에 종사하는 제작자에게는 우선순위가 낮은 기술이거나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성철 에픽게임즈코리아 대표. / 오시영 기자
박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장르 게임을 직접 만들어 서비스하고, 언리얼 엔진이 ‘살아있는 기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듣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91년 설립한 에픽게임즈는 게임사로 출발했다. 다채로운 장르 게임을 개발하던 에픽게임즈는 1998년 1인칭 슈팅(FPS)게임 ‘언리얼’을 내놓게 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게임을 만들 때 활용한 개발 도구가 게임 엔진 ‘언리얼 엔진’의 시초가 됐다.

박성철 대표는 "게임을 만들 때 누구나 개발도구를 활용하는데, 이것이 바로 게임 엔진이다"며 "에픽게임즈의 수장인 개발자 팀 스위니는 누구나 잘 활용할 수 있는, ‘끝내주는(Lit)’ 개발 도구를 만들기로 유명한 사람이다"라고 설명했다.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 / IT조선 DB
다시 말해 게임 엔진 기업이 게임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게임사로 출발해 자연스럽게 장기를 살려 게임 엔진 사업도 시작한 기업이 에픽게임즈라는 의미다.

언리얼 엔진2·3는 각각 FPS게임 ‘언리얼’과 TPS게임 ‘기어즈 오브 워’ 개발에 최적화해 슈팅게임을 만들 때 유리한 엔진이었다. 이와 달리 최신 엔진인 언리얼 엔진4는 범용성에 초점을 맞췄다.

박성철 대표는 "언리얼 엔진으로 만든 게임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져 어떤 게임이 우리 엔진을 써서 만들었는지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알아내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에픽게임즈는 직접 언리얼 엔진4로 만든 게임 ‘포트나이트’를 서비스하며 얻은 노하우를 엔진에 녹인다. PC·모바일·콘솔(게임기) 플랫폼에서 게임을 선보일 수 있도록 돕는 크로스플레이 기능이 대표적이다.

5G 시대를 대비한 ‘픽셀 스트리밍’ 기술도 엔진에서 제공한다. 이 덕에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구현하려는 회사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었다.
언리얼 엔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건축 도구 ‘트윈모션’ 소개 영상. / 트윈모션 유튜브 채널
최근에는 언리얼 엔진을 ‘게임 엔진’이라는 용어로 한정해 부르기도 어렵다. 영화·애니메이션, 건축·설계, 차량(모빌리티), 가상·증강현실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산업계에서 이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박성철 대표는 특히 건축 분야에서는 언리얼 엔진이 최고라는 객관적 자료도 다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조사에서 건축 분야 렌더링 엔진 상위 10개를 꼽은 적이 있는데, 구식 엔진을 제외하면 게임 엔진 중에서는 언리얼 엔진이 경쟁사 대비 3배 이상 높은 이용률로 1등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포르셰 70주년을 기념해 만든 ‘스피드 오브 라이트’ 영상, 언리얼 엔진의 실시간 레이트레이싱 기술을 활용했다. / 언리얼엔진 유튜브 채널
자동차 분야 활용도 활발하다. 박 대표는 "영국 슈퍼카 브랜드 맥라렌과 손잡고 ‘570S’ 모델을 설계 단계에서부터 협업한 것이 벌써 몇 년 전으로, 내로라하는 슈퍼카는 물론 도요타, 쉐보레 등 브랜드도 언리얼 엔진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한 시각화를 넘어 실제 공정에서 작업할 때 별도 작업 없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3D 렌더링해 원 소스 멀티 유즈(OSMU)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방송, 시각효과, 애니메이션 등 활용 사례도 다수다. 박성철 대표는 "KBS, MBC에 언리얼 엔진 활용 예를 보내달라고 하니, 기자간담회에서 차마 다 소개하지 못할 정도의 분량을 보내줬다"며 "다큐멘터리, 일반 드라마, 사극 로케이션, 예능 등에서 소위 말하는 ‘쪽대본’이 나오더라도 언리얼 엔진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MBC 예능 ‘두니아’에서도 언리얼 엔진을 활용했다. /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글로벌 게임·게임엔진사 에픽게임즈에게도 한국은 특별한 시장이다.

박성철 대표는 "게임을 제일 잘 만드는 것과는 다른 문제긴 하지만, 언리언 엔진을 가장 잘 다루는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팀 스위니는 분명 한국이라고 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언리얼 엔진2는 실내 공간에서 이뤄지는 총싸움을 구현하기 알맞게 설계한 도구인데, 한국 개발자는 이를 활용해 오픈월드 게임을 제작했다. 박 대표는 "한국 개발자는 상상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다"며 "한국 개발자의 뛰어난 개발력은 에픽게임즈가 한국 지사를 빨리 세워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자사 게임 ‘포트나이트’로도 한국 시장을 꾸준히 공략한다. 박 대표가 최근 챕터2 업데이트에 대해 "한국 이용자를 위해 싹 다 바꿨다"고 소개했을 정도다. 그는 "한국은 부분 유료화(F2P) 모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나라로, 한국에 맞추는 것이 오히려 해외 서비스를 할 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포트나이트 챕터1이 끝나는 이벤트, 에픽게임즈는 챕터2에서 이 게임을 ‘한국을 위해 싹 바꿨다’고 표현했다. / ‘DRLUPO’ 트위치 갈무리
박 대표는 또 "e스포츠 대회를 열면,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성적이 돋보인다"며 "한국에서 게임이 인기를 끌면 매출은 물론, 전략적인 재미가 한결 늘어 게임 신 자체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평가했다.

게임 전시회 지스타에도 2012년부터 꾸준히 참여해 지스타 2018에는 메인 스폰서를 맡았다. 외국 기업이 메인스폰서를 맡은 것은 행사 최초였다. 지스타 2019에서는 전시장에 ‘포트나이트 크리에이티브(포크리)’처럼 쉬운 도구부터 건축 시각화 도구와 ‘트윈모션’까지 다양한 창작·개발 도구를 전시했다.

박성철 대표는 "B2C 전시장에 게임 엔진을 전시하기로 결정했을 때 솔직히 잘될 줄은 몰랐는데, 방문객이 줄까지 서주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비싼 B2B 입장권을 사지 않고도 게임 엔진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다는 반응도 많았다. 한국이 개발자 커뮤니티가 강한 나라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스타 2019에서 한 방문객이 ‘픽셀스트리밍’ 기능을 이용해보는 모습. / 오시영 기자
에픽게임즈의 목표는 바람직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개발자를 돕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에픽게임즈는 2015년 3월 2일, 언리얼 엔진4 무료화 선언을 하고, 해당 엔진의 최신 기능과 도구 모음, 소스코드까지 전부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게임은 물론 건축, 교육, VR, 영화 등 모든 개발자가 기본적으로는 무료로 언리얼 엔진 4를 이용할 수 있다.

게임에 한해 언리얼 엔진4 기반 프로젝트 분기별 매출액이 3000달러(350만원)을 넘으면 5%의 사용료만 지불하면 된다. 박성철 대표는 "개발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무료화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무료화로 인해 수익이 줄어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용자가 많은 서비스는 악독한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하지 않아도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실제로 무료화 이후에도 매출이 줄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수가 이용하는 서비스는 일부 성공한 회사가 주는 사용료만으로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대표에 따르면 언리얼 엔진 이용자는 3월 기준으로 750만명으로 늘었다. 이후에도 에픽게임즈는 각종 고비용 애셋 등을 무료 공개한다.

게임 유통 플랫폼 2018년 12월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출시한 이유도 개발자를 위한 건전한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바라서다.

박성철 대표는 "모바일, PC를 가리지 않고 개발자는 30%에 달하는 플랫폼 수수료를 내야 했는데 이는 불합리하다 생각한다"며 "우리 플랫폼은 수수료를 12%만 받으므로 시장 선택권을 더 늘린 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박성철 대표. / 에픽게임즈코리아 제공
박 대표는 한국 게임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산업 면에서 한국에만 있는 규제가 완화된다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1시간 단위로 게임 이용자에게 플레이 시간을 알리고 게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경고메시지’는 사소한 규제 중 하나다. 하지만 실제 업계에서 느끼는 무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다. 외국 게임을 한국에 들여올 때, 이는 따로 개발해서 일일이 넣어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한국 시장 자체는 세계에서 그렇게 큰 규모의 시장이 아닌 반면, 각종 규제는 많아 한국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며 "규제는 생태계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규제가 유연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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