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한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 자리에 착석하자, 인공지능(AI) 행원이 필요한 업무를 묻는다. 원하는 업무를 말하거나 화면을 클릭하면, AI 행원이 간단한 업무를 처리해 준다. 복잡한 업무로 넘어가니 화상 상담을 통해 본사 근무 직원이 대신 나선다. 현재 시중은행들이 운영하고 있는 디지털 점포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4대 은행의 디지털 점포는 ▲신한은행 6곳(체험공간인 디지로그 브랜치 제외) ▲우리은행 2곳 ▲하나은행 1곳 등이다. KB국민은행은 근 시일 내로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역에 슈퍼마켓형 디지털 점포를 열 계획이다.
화상상담 창구 구성은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3개 은행이 모두 비슷하다. ▲정면에 위치한 큰 화면 ▲고객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터치 패드 ▲서류를 팩스로 제출하거나 약관을 받을 수 있는 프린터기 ▲신분증 투입구 ▲손바닥(장정맥) 인식기가 구비돼 있다.
본사의 화상상담 담당 직원이 원격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이용이 서툰 고객을 위해 안내직원을 배치한 경우도 있다. 간편 업무는 AI 행원의 안내를 받을 수 있고, ▲비밀번호 재설정 ▲카드나 통장 재발급 등 업무를 볼 수 있는 스마트 키오스크도 각 디지털 점포에 배치돼 있다.
의외로 인기 점포…빠른 진행 간편, 안전한지는 글쎄
신한은행은 서울 시내에 혁신형 점포 1곳, 디지털 라운지 5곳 등 디지털 점포를 최다 보유한 은행이다. 혁신형 점포는 편의점·마트와 제휴, 일상 편의시설에 은행 점포를 도입한 곳이다. 디지털 라운지는 신한은행이 디지털화 위해 점포를 통폐합하면서, 고객이 디지털로 은행업무 볼 수 있도록 만든 무인형 점포다.
혁신형 점포 ‘GS더프레시 광진화양점’은 슈퍼마켓 한켠에 자리한, 슈퍼마켓형 점포다. 주택가이자 대학가에 위치해 손님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곳에는 안내직원 한명이 상주하며 서비스를 돕고 있다. 해당 직원은 "스마트 키오스크 이용자 수는 하루 50여 명 정도로 꽤 많은 편"이라며 "화상상담 창구는 하루 5~6명 정도 이용한다"고 답했다.
이곳에서 화상상담 직원의 안내로 주택청약 종합저축 계좌를 개설했다. 편리하긴 하나 약관 안내가 자세하지는 않아, ‘괜찮을까’하는 다소의 우려가 일었다. 그러나 터치패드 인식은 방문 해 본 3개 은행 중 가장 깔끔하게 진행, 계좌 개설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꼼꼼한 화상안내…프라이버시 없는 뻥 뚫인 공간 아쉬워
우리은행의 디지털 점포, ‘디지털익스프레스(EXPRESS) 구일점’은 동네 교회 건물 한켠에 자리한다. 주변에 아파트가 즐비하고, 가장 가까운 역인 구의역과의 거리도 상당해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점포다.
구일점은 일반 지점과 병행해 디지털 점포가 운영된다. 지점 안내 창구에서는 일반 행원이 기존처럼 은행 업무를 봐주고, 나머지 한개의 창구에서 AI 행원 또는 화상상담 직원과 업무를 볼 수 있다. 화상상담 창구에 앉아 입출금 통장 개설과 손바닥(장정맥) 인증 등록을 해봤다. 화상상담 직원이 타행보다 약관 설명을 꼼꼼하게 해주는 터라 시간이 좀 더 소요됐다.
우리은행 디지털 점포의 아쉬운 점은 ‘터치패드’다. 개인정보 입력 도중 터치패드가 자꾸 버벅거려, 진행이 늦어지니 직원이 원격으로 도움을 줬다. 화상상담 직원은 "원격으로 업무가 진행되다보니 가끔 입력이 버벅거려 느려질 때가 있다"며 "그럴 때는 고객이 정보를 육성으로 말해주면, 화상상담 직원이 대신 입력해주곤 한다"고 설명했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안 된다는 것도 개선점으로 꼽혔다. 창구가 열려있는 형태로 배치돼 있다 보니, 옆자리 일반 지점 창구 직원의 목소리와 화상상담 직원의 목소리가 겹쳐 집중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화상 업무가 신기한지, 업무를 보는 1시간 내내 동네 주민들이 뒤쪽에서 상담하는 모습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쳐다봤다.
점포 없는 동네에 꼭 필요…안내직원 없어 불편
편의점 한켠에 푹신한 의자와 탁자가 2~3개 놓여있다. 이곳에서 한 주민은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옆에서는 구매한 음식을 먹고 있다. 컵라면이 진열된 공간 옆 구석에는 화상상담 창구, 스마트 키오스크, ATM 기기가 놓여있다.
무인점포인 ‘CU마천파크X하나은행점’의 풍경이다. 이곳은 마천역에서 10여 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다. 손바닥을 등록하면 대다수 디지털 점포에서 신분증이나 카드 없이 업무 보기가 가능하다는 말에, 간단히 손바닥 인증만 등록했다. 터치패드에 정보를 입력하던 타행과 달리 손가락으로 정보를 입력하고, 수화기를 들어 상담원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된다.
인증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다른 기능을 더 체험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줄이 생겼다. 자신을 60대라고 소개한 동네주민 A씨는 "주변에 가장 가까운 하나은행 점포가 한정거장 떨어진 거여역에 위치해 너무 멀어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점포가 익숙하지 않은 고객을 위해 최소 1명의 안내직원을 배치해둔 타행과 달리,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만약 불편사항이 생기거나 업무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편의점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편의점 알바생이 은행 업무를 얼마나 도와줄지는 미지수.
디지털 점포 확대는 기술력 확보가 관건이다. 화상상담 창구보다 간편 업무를 볼 수 있는 스마트 키오스크의 경우 다수 은행이 업무 시간에 점검을 진행해 이용이 불가했다. 보다 편하게 은행 업무를 보기에는 아직 미흡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빅테크(네이버, 카카오)에 비교했을 때, 은행권 디지털화 정책이 아직 초기 단계임을 내부에서도 인식하고 있다"며 "지금 선보이는 기술은 완성형이 아니라, 무인점포나 전면 비대면 상품가입 등 미래 운영 방식에 대비하는 테스트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KB국민은행은 이마트와 제휴한 ‘KB디지털뱅크 NB강남터미널점’을 4월 말에서 5월 초 열 예정이다.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역 내에 위치한 이마트 노브랜드(NB) 강남터미널점에 스마트 텔레 머신(STM)과 화상상담 전용 창구를 배치, 영업점 수준의 업무처리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