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10년 만에 회장직에 올랐다. 그룹 총수로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긴 했지만, 27일 ‘삼성 회장’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달면서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 포문을 열었다.
삼성전자는 27일 이사회를 열어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책임 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올해 54세인 이 회장은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경영이나 경제가 아닌 인문학을 선택한 배경에는 삼성 창업주이자 할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이 있다. ‘경영은 언제든 배울 수 있으니 그 전에 인간과 역사를 먼저 배우라’는 조언이 있었다.
1991년 삼성전자 공채 32기로 총무그룹에 입사한 이 회장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대학원 경영관리학과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업을 마친 후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상무보로 복귀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았고, 2003년 상무로 승진했다.
삼성 특검 결과가 발표된 2008년 4월에는 오히려 최고고객책임자 보직을 내놓고 국내외 사업장을 돌며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9년 5월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을 핵심으로 하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이 대법원 무죄로 종결되면서 후계 구도 재편이 가시화했다. 이 회장은 같은 해 12월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해 경영 보폭을 넓혔다.
부친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 5월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섰고, 2015년 5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며 그룹 승계를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는 입사 이후 25년 만인 2016년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올랐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 비자금 특검 수사로 쇄신안을 내놓고 전격 퇴진한 이후 8년 6개월 만에 삼성 오너 일가 중 처음 등기이사직을 맡은 것이다.
이 회장은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풀려났다. 2020년 5월 총수로서 처음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4세 경영 포기'를 전격 선언하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는 2021년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재수감됐다. 2021년 8월 가석방된 이 회장은 형기가 종료된 뒤에도 5년 동안의 취업 제한 규정 때문에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았지만 올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며 모든 제한이 풀렸다.
회장 타이틀을 달고 경영 전면에 나서는 만큼 이건희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의 뒤를 이을 '뉴삼성' 메시지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 인공지능(AI), 차세대통신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태스크포스(TF) 수준인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정식 조직으로 복원될 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