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입사 31년차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54세에 회장직에 올랐다.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 이건희 회장을 잇는 삼성전자 세 번째 회장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취임하면서 ‘이재용의 뉴삼성’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고 분석한다. 이 회장은 그동안 공식 석상에서 초격차 기술 확보와 대규모 투자 등 사업가적 마인드를 보여준 것은 물론, 준법 시스템 구축과 부당한 관행 개선, 4세 승계 포기 등 뉴삼성 구상을 하나 둘 꺼내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포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포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작고한 후인 2020년 12월 ‘승어부(勝於父)’ 선언을 통해 ‘뉴삼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크고 강한 기업’을 넘어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선대보다 더 크고 강하게 만드는 것이 효도라는 가르침, 그 말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경쟁에서 이기고 성장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의 정신과 자세를 바꾸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거부할 수 있는 철저한 준법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뉴삼성’ 구축안에는 신사업 발굴을 통한 사업 확장, 준법문화 정착, 산업 생태계와의 소통 확대 및 지원 등 내용이 담겼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2020년 5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4세 승계 포기와 노사문화 개선을 약속했다.

그는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승계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다"라며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며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은 준법경영 시스템 구축을 위해 외부 독립기구인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배구조 개편 관련 용역을 맡기고, 전문가를 영입해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나선 상태다.

이외에도 이 회장은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를 선언하며 삼성전자 등 계열사에 노조를 설립하고, 임금협상을 진행했다.

경영 전면에 나선 이 회장의 최대 과제는 ‘초격차’ 기술 확보다. 그는 ‘기술 중시’를 외치며 미래를 보는 선구안을 강조했다.

삼성은 2021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을 제치고 가장 많은 반도체를 판매한 기업으로 올라섰지만, 경쟁사들의 기술 추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 ‘TSMC’가 삼성전자를 넘어 전체 반도체 시장 1위를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은 8월 15일 복권 후 첫 현장 경영으로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을 방문했다. 당시 그는 "세상에 없던 미래를 만들자"며 반도체와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2022년 6월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에도 "시장의 혼동과 불확실성이 많은데,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모셔오고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라며 "그 다음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도 기술, 두번째도 기술, 세번째도 기술 같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불확실한 경제 환경 속에서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에도 고민이 깊다.

이 회장은 5년간 450조원 규모 투자 의미에 대해 "숫자는 모르겠고, 그냥 목숨걸고 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가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반도체 부문에서 시스템반도체를 삼성전자의 새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는 2019년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한 1등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연구개발(R&D)에 73조원, 시설 및 인프라 구축에 60조원을 쏟아붓고, 전문인력을 1만 5000명쯤 채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이 회장은 조직문화 개선에도 관심이 높다. 복권 후 주요 계열사를 방문하며 워킹맘부터 MZ세대 직원까지 다양한 주제로 직원과 만나 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그는 8월 30일 방문한 삼성SDS 워킹맘 간담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직원이 애국자"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사내 어린이집, 재택근무 제도 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화답했다.

2020년 8월 6일에는 수원사업장에서 여성 직원과 만나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라며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고치자. 유능한 여성 인재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하고,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자"라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