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한 프로그래머가 1만비트코인(현재 시세 5000억원)으로 피자 2판을 주문했다. 이는 비트코인이 첫 결제 수단으로 쓰인 사례가 됐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이날을 '비트코인 피자데이'라 부르며 매년 기념하고 있다.
이처럼 비트코인은 화폐를 대신한 결제 수단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화폐로써의 기능이 막힌 상태라 봐도 무방하다. 이전에 시도됐던 비트코인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페이코인과 같은 오프라인 거래는 당국 제재로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만약 이같은 규제가 계속되면 블록체인의 목적이 사라져 산업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일 암호화폐 ATM 정보 웹사이트 ‘코인ATM레이더’에 따르면 현재 총 74개 국가에서 비트코인 ATM이 운영되고 있다. 가장 많은 ATM이 있는 국가는 미국으로 총 2만8864대를 보유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캐나다가 2890대를 보유하고 있고, 이후 ▲호주 850대 ▲스페인 304대 ▲폴란드 287대 순이다. 주요 선진국뿐 아니라 케냐, 우간다,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비트코인 ATM을 찾아 볼 수 있다.
10년전, 비트코인ATM 보유국이었던 한국…하지만
반면 한국에는 비트코인 ATM기기가 없다. 과거에는 있었다. 딱 10년 전인 2014년 3월, 코인플러그(현 씨피랩스)는 강남 코엑스 근처에 비트코인 ATM을 설치했다. 현금을 입금하면 비트코인을 살 수 있고, 비트코인 지갑에 있는 암호화폐를 기기를 통해 인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사업을 중단했다.
씨피랩스 관계자는 "당시 해외송금 등 서비스를 많이 출시했었는데 법적인 규제가 불분명했다"며 "법적인 부분이 미비하니 정리될 때까지 서비스가 어려울 것 같다라는게 당국의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ATM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부활 움직임은 있다. 블록체인 핀테크 플랫폼 기업 다윈KS이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회사는 알트코인을 제외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화폐만 사용 가능하고, 국내 이용자가 아닌 외국인 대상으로 기기 운영을 추진하고 있다.
이종명 다윈KS 대표는 "운영을 위해 면세점이나 호텔쪽하고 협의를 하고 있고, 몇 달 안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상자산 결제 요원…당국 "돈세탁 우려"
하지만 결제 부분은 아직이다. 그나마 운영 사업자였던 페이코인(PCI)의 가상자산 결제가 막힌 게 컸다. 편의점, 카페, 레스토랑 등 일상생활 영역에서 현금이나 카드 대신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작년 1월 페이코인 측이 제출한 가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에 대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불수리 처분을 내렸고, 이후 집행정지 신청도 각하돼 지난해 2월 5일 서비스가 중단됐다.
페이코인은 지난해 3월 PCI 결제 서비스를 국내에서 추진하는 건 단기간 내 어려울 걸로 판단, 국내에선 다른 가상자산 구매시 결제를 지원하고, 향후 규제 환경에 맞춰 대응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후 11월,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단계 중 하나인 새 정보보호 관리체(ISMS) 예비인증을 받아, 다시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불러왔다.
하지만 ISMS의 인증 유효일은 당일인 2월 1일까지고, 아직까지 VASP 신고를 안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국내 재진출이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다. 만약 유효일이 지나면 ISMS 예비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서비스에 대해 우려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자금세탁 가능성이다. 비트코인 ATM기나 페이코인 등 거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이용자 신원 확인이 제대로 안되면 익명성을 이용해 범죄에 악용할 수 있다는 것. 실제 국내에서도 범죄로 얻은 수익을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세탁한 사례가 수차례 발생한 바 있다. 당국이 트래블 룰 적용 등 암호화폐 규제에 고삐를 당기는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 지적한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론 생태계 구축도 하지 못하고 산업의 싹이 잘려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기본적으로 정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해서 본다"며 "인프라로 볼 수 있는 블록체인은 육성하면서 그 목적인 가상자산 생태계는 금지하겠다니 생태계가 열악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상훈 기자 lees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