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줄 알았던 불완전판매가 또 다시 문제를 일으켰다. 2008년 키코(KIKO) 사태에 이어,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거쳐 이번엔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이 된서리를 맞았다.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 불완전판매가 인정됐다. 배상비율의 기준이 되는 분쟁조정안이 마련됐고 판매 은행들은 모두 받아들였다. 덕분에 지난해까지 역대급 실적 기록했던 시중은행의 1분기 실적이 고꾸라졌다.
하지만 3개월여가 지난 지금 상황은 또 한 번 바뀌었다. 5월부터 홍콩H지수가 상승하면서 손실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2분기 실적은 되려 낙관적이다. 1분기 보수적으로 잡았던 충당부채 환입도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다.
올해 1분기 5대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3% 줄어든 3조3728억원을 기록했다. 고금리에 이자이익은 늘었지만 홍콩 ELS 손실 반영 때문이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실은 KB국민은행이 862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NH농협은행 3416억원, 신한은행 2740억원, 하나은행 1799억원, 우리은행 75억원 수준이다.
5대 은행의 충당부채 총합은 1조6650억원에 달한다. 충당부채는 판매 규모와 비례한다. 은행별로 ▲KB국민은행 8조원 ▲NH농협은행 2조2000억원 ▲신한은행 2조4000억원 ▲하나은행 2조원 수준으로 판매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의 순익은 58.2%나 줄어든 3895억원을 기록했다. 이들 5개 은행 가운데 순이익 규모가 최하위로 밀려났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농협은행 등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3%, 13.1%, 37.3% 감소했다.
1분기 손실 비용 반영을 끝낸 은행들은 이후 주가 상승에 안도하고 있다. 홍콩H지수는 지난 5월부터 상승랠리를 시작해 6500선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올해 1월 22일 최저점인 5001.95와 비교하면 30% 넘게 급등한 것으로 투자자들의 손실도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손실이 줄면서 충당금 환입도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금리 장기화, 가계·기업 대출 확대 등으로 2분기 실적 회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또 다시 역대급 당기순이익을 기록할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고객 신뢰 회복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이자수익이 늘어나자 ‘이자 장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불완전 판매 이슈가 또 다시 터졌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물론 여론의 비판은 그 어느때보다 거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월 홍콩H지수 ELS 사태와 관련해 은행권을 향해 강력한 재발방지를 주문하면서 감독 당국의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최근 몇년간 은행권에서 DLF, 라임 사모펀드, 홍콩 H지수 ELS 등의 불완전판매가 잇달아 발생했고 최근까지도 서류 위조 등으로 횡령 사고가 끊이지 않는 등 임직원의 도덕불감증, 허술한 내부통제 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면서 은행권의 변화를 촉구했다.
금융당국은 같은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통해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고위험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금융사의 판매 관행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투자 관행까지 개선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