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를 끌어왔던 소송에서 자유로워진 가상자산 리플(XRP)이 시장의 환호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 미국 법원이 리플에 대해, "증권이 아니다"라고 인정하면서 리플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한층 난처해진 모습이다. 

가상자산 리플 가격 추이 / 자료 코인마켓캡
가상자산 리플 가격 추이 / 자료 코인마켓캡

8일 글로벌 가상자산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리플은 0.6달러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불과 12시간 전까지만 해도 0.5달러를 밑돌았었다. 지난 4년간 이어져온 리플 발행사 리플랩스(RippleLabs)와 SEC간 소송이 사실상 리플의 승리로 끝난 것이 영향을 미쳤다. 

현지시각 7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뉴욕 남부 지방법원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리플(XRP) 토큰이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 리플랩스에 대해 1억 2500만달러(1720억원)의 민사 벌금을 결정했다. 이날 결정 벌금은 SEC가 제시한 여러 혐의 중 리플랩스가 기관에 판매한 일부 매각건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한 금액이다.  

앞서 SEC는 지난 2020년 12월 리플(XRP)이 증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리플랩스가 대중들에게 13억달러(1조7900억원) 가량의 XRP를 판매한 것이 ‘증권법 위반’이라며 회사와 임원진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브래드 갈링하우스 등 리플 임원진에 대해서도 사기 등의 혐의로 제소했다. 

SEC는 리플랩스에 대해 판매액 8억 7600만달러 환수와 8억7630만의 벌금, 1억9800만달러의 이자를 부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에 법원이 결정한 벌금은 SEC가 요구한 총 20억달러(2조7540억원)의 약 6%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뉴욕 법원이 리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은 대부분의 혐의를 부정했다. 법원은 “SEC가 리플랩스의 가상자산 리플 판매가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손실(위험)을 초래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이 사건은 사기, 기만, 조작이 확정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음으로 1단계 정도의 벌금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리플랩스가 SEC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라 해석한다. SEC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증권성’ 여부가 부정됐으며, SEC가 주장한 금액보다 훨씬 적은 벌금이 부과됐기 때문이다.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랩스 CEO는 이날 판결 후 "법원은 SEC가 지나치다고 판단해 그들이 요구한 금액의 약 94%를 삭감했다"며 "우리는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회사를 계속 성장시킬 수 있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리플은 지난 2017년 발행된 국제송금 용도의 알트코인으로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 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이어 시가총액 3위까지 오른 바 있으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긴 신경전 등으로 지지부진한 가격 흐름이 이어지며 현재 시가총액 7위에 머물러 있다. 

리플랩스는 SEC와의 소송전에서 리플이 증권이 아닌 글로벌 송금을 위한 ‘통화’라 반박해왔다. 하지만 증권성 논란에 휩싸이며 코인베이스 등 미국 대형 거래소에서는 리플 상장을 폐지하기도 했다. 이에 한 때 3000원까지 올랐던 가격이 200원선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양측간 공방이 계속되던 지난해 7월, 법원은 처음으로 리플은 증권이 아니라는 약식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리플랩스가 직접 리플을 판매한 것은 불법 소지가 있으나, 개인투자자들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매매하는 것은 증권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판결은 지난해 7월 잠정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해 판결문을 통해 “거래소에서 리플을 구매하는 것은 리플의 이익에 대해 합리적인 기대를 한 것이 아니므로 증권법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SEC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리플 외에도 많은 알트코인을 증권으로 분류하려는 SEC의 기조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놓고 있다. SEC는 지난달 바이낸스와의 소송에서 가상자산 솔라나의 증권성 입증을 포기하기도 했다. 

크리스 라슨 리플 공동창립자는 “우리를 향한 SEC의 강력한 반대운동이 마침내 끝이났다”며 “이번 결정으로 이 행정부와 가상자산 간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