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의 독점적 지배력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이들 빅테크를 제대로 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강도높은 제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빅테크의 플랫폼 독과점 폐해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법정에서 구글, 유튜브, 애플, 메타 등에 대해 재판부가 제재 수위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 / DALL·E 3

빅테크 반독점 규제에 적극나선 EU·美

23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9월 10일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SJ)는 애플과 구글이 EU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EU 집행위의 손을 들어줬다. 애플과 구글은 각각 143억유로(약 21조원)와 24억유로(약 3.5조원)의 과징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U는 애플이 아일랜드에서 조세회피 수법을 써 법인세 혜택을 받아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봤다. 애플이 아일랜드에서 받은 조세혜택이 EU의 보조금 규정에 어긋났다는 것이다. 구글의 경우는 2017년 6월 구글이 비교쇼핑 서비스인 구글쇼핑을 우선 표시·배치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제한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여기에 EU는 지난해 9월 디지털서비스법(DSA)에 이어 올해 3월부턴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해 빅테크의 제재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EU집행위는 또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에 광고시장 독점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페이스북이 무료 마켓플레이스 서비스로 법을 위반하고 경쟁사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 정부도 반독점 규제에 적극이다. 지난해 1월 미국 법무부는 구글이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막는 등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구글을 제소했다. 구글의 주요 매출이 검색엔진을 통한 온라인 광고에서 비롯되는만큼 이번 소송에서 패소시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韓, 솜방망이 징계에 처벌도 차일피일

우리 정부는 빅테크 제재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우리나라는 2021년 세계 최초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을 제정하며 규제 신호탄을 쐈으나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규제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는 구글과 애플이 독점 지배력을 남용해 인앱결제 강제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680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예고했다. 그러나 11개월이 넘도록 실질적인 처분 집행을 미뤄오고 있다. 처분을 내린 금액도 매출액의 1% 수준에 그쳐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의 유튜브 뮤직 끼워팔기 혐의도 변죽만 올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 구글코리아 현장조사에 착수한 이후 1년 넘게 법 위반 여부만 들여다보며 제재 결정을 내지 못했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참 늦은 시점에 조사에 착수한데다 이미 구글의 시장 지배력이 커진 상황에서 제재를 가하는 것에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플랫폼이 불복할 경우 실질적 제재 이행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타의 경우는 개인정보위원회와 대법원에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앞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메타에  330만명의 개인정보를 이용자 동의 없이 다른 사업자에 제공한 혐의로 과징금 67억원의 제재했다. 하지만 메타는 이에 불복했다. 

전문가들은 유럽 등 규제당국의 제재를 참고해 독과점의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명확한 기준을 설정한 후 패널티 부과 등 제재 조치를 빠르게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대 교수는 "유럽의 규제 흐름을 따라가되 국내 현실에 맞게 규제를 정비해 빨리 제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이대로 두면 빅테크 중심의 승자독식이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비중의 마켓셰어(시장점유율)를 확보하지 못하게끔 패널티 부과 및 강도높은 제재 등을 빨리 이행해 건전한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