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 여건이 충분하지만 환율 등 대내외 불확실성을 이유로 동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숨 고르기’ 차원의 동결로 내달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남겨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개최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개최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한국은행

이 총재는 16일 오전 기준금리 결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기만 보면 인하가 당연하지만 (국내 정치 불안 등에) 환율이 필요 이상으로 올랐다”고 동결 결정을 설명했다.

이어 “계엄 이후 내수 경기가 예상보다 많이 떨어졌고, 4분기 성장률이 0.2%를 밑돌 수도 있다”면서 “국내 정치 갈등이 자리를 잡으면 미국 등과 좀 더 독립적으로 통화정책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신성환 금융통화위원만 0.25%포인트 인하 소수의견을 냈지만 나머지 다섯 명의 위원도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통위원 6명 모두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 총재는 “금통위 모든 위원이 경기 상황만 보면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한 상황이라고 했다”면서도 “이번에는 특히 환율을 중심으로 한 대외 균형이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악화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환율과 관련 미국 달러화 강세와 더불어 비상계엄 선포·해제 등에 따른 정치 불안정으로 인한 요인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서 1470원 수준까지 올랐는데 이 가운데 50원가량이 미국 달러화 강세에 따른 영향, 20원이 정치적 이유”라며 “다만 국민연금의 달러 헤지물량, 외환당국의 시장안정화 효과로 인한 하락 효과가 있어 계엄에 따른 환율 상승분은 30원 정도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만일 환율이 1470원대로 오른 채 유지된다면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저희가 예측했던 1.9%보다 0.15%포인트(p) 올라 2.05%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상계엄 여파가 환율뿐 아니라 경제 성장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이 총재는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4% 정도는 될 것으로 봤는데 내수, 소비 등이 많이 떨어졌다”며 “4분기 성장률은 0.2% 아래로 떨어졌을 수도 있고 이에 대한 기저효과로 올해 성장률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든지 대외 불확실성이 큰 상태에서 상황을 좀 더 보고 확신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앞서 두 차례 금리를 내린 효과도 볼 겸, 숨 고르기 하면서 판단하는 것이 신중하고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금리 인하 사이클은 지속될 것”이라면서 “한은이 경기를 전혀 무시하고 동결을 결정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이 총재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지하는 발언을 낸 것은 정치가 아닌 ‘경제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설명도 보탰다. 그는 “국무총리 탄핵 이후 최 대행이 대행의 대행인데 또 탄핵당한다면 국가 신인도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야 한다”며 “경제를 안정화하려면 금리를 얼마 낮추는 것보다 이것이 더 근간이라고 봤기 때문에, 경제 안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는 “정치 프로세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어제 영장 집행을 계기로 우리 경제 프로세스가 정상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추경을 한다면 가급적 빠르게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성장률이 떨어진 만큼 보완하는 정도로 추경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며 “15조원에서 20조원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